기도문과 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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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과 기억력

by stingo 2025. 5. 31.

어제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 매일 하는 세라젬 기구에 누워 기도를 바치려하는데,
기도문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5년 이상을 해온 기도이기에 이게 웬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려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세라젬이고 뭐고 할 기분이 싹 달아나면서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서 기도문을 떠올리려 했지만, 되질 않았다.
결국 기도문 책을 꺼내 보며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 하지만 기도문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5년 이상을 해온 기도문인데, 흡사 처음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잠시 잠을 잔다면 기억력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올리가 없다.
오히려 더 말똥말똥해지는 것이다.

두려움은 더욱 커져갔다.
노트에 기도문에 관련한 문구를 생각나는대로 쓰면서 애를 썼지만 막막한 생각만 감돌 뿐이었다.
기도문은 1단에서 시작해 5단으로 끝난다. 기도문 책을 보며 1단을 써내려 갔다.
그렇게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하면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뭔가 실마리 같은 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도문 책을 연결시켜 나갔다. 어렴풋하나마 조금 씩 열려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실마리가 찾아지기 시작한 건 저녁 무렵, 그러니까 6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래도 막막하기는 여전했다. 밖으로 나가 걸으면 될 것 같은 생각으로 나왔다.
아파트 뒤편 농로를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나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농로 끝까지 갔다고 되돌아 오는 길, 맞은 편 저멀리 마리아수도회 성당의 십자가 첨탑이 보인다.
가끔씩 걸으며 기도를 바칠 때 바라보는 첨탑이다. 십자가 첨탑을 보며 성호를 그었다. 두어 차례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뭔가 머리를 휙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기도문이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꽉 막혀있던 개인지향의 기도문도 슬슬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서 그 생각이 났다.
기도문이 다시 생각이 나질 않으면 어떡하지.
머리 속에서 조심스럽게 기도문을 꺼내 두렵고 조바심스런 마음으로 외어 보았다. 술술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말로써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유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성당 십자가 첨탑을 보며 걸었다. 내 입에서 기도문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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