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禁男의 城主 金活蘭 박사는 지금 첫 시간의 강의가 시작되어 조용해진 白堊의 전당 하층 총장실에서 호오 한숨을 뿜으며 창밖을 바라다보고 있다... 영원한 처녀 김 총장의 망중한의 일순이다."
1939년 이화여대의 첫 한국인 총장인 7대 김활란 박사를 인터뷰한 1955년 1월 어느 날 어느 신문기사의 리드 글이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57세의 김활란 총장은 梨大가 자신의 관장아래 전통적인 ‘禁男의 영역’임을 은근히 자부하는 내용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여자들만 다니는 여자대학이 ‘禁男의 영역’으로 알려진 효시의 대학이 이화여자대학이다. 1886년 개교한 우리나라 첫 여성만의 이 대학에 128년 동안 붙여진 레테르이고, 이화여대하면 보통 거부감 없이 으레 그렇게 생각해 왔다. ‘禁男’은 ‘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봉건 유교적 관념과 그 궤를 같이 한다. 朝鮮말 이화학당 개교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돌이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구닥다리 같은 느낌이 드는 이화여대의 이 ‘禁男’의 전통은 특히 학교를 관장하는 총장의 면면들에서 그 상징성이 더 부각된다. 초대 매리 스크랜턴 이래 현재 14대 김선옥 총장까지 모두 여성총장들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스크랜턴을 제외하고 모두 미혼이었다는 것은, 이화여대가 ‘禁男’의 상징성을 학교의 전통으로 중하게 여겨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禁男’의 상징으로, 개교 이래 여성 총장을 고수해온 이화여대에서 남자 총장 선출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이다. 지난 해 말 학교이사회에서 제 15대 총장후보 자격규정을 고쳐 ‘여성에 한정’이라는 부분을 ‘여성에 한정하지 않음’으로 수정함으로써 남자도 총장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인데, 이화학당 개교 이후 128년만의 일이다.
여성으로만 총장 입후보를 제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을 골자로 한 각 단과대학의 의견수렴을 거쳐 열린 교무회의에서 이 안건이 결정됐고 이사회에 참석한 7명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한다. 이화여대의 이 같은 총장입후보자에 대한 성별규정 철폐는 결국 시대적 상황과 학교의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면서 백년 이상을 이어온 전통을 버리는 선택을 한 셈이다.
사실 리더십과 재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리더십에 성별이나 혼인유무 등을 따지는 것은 구시대적 관습이다. 이화여대의 경우 전임교수 987명 가운데 남자교수 비중이 절반에 달하고 있는 현실에서 총장을 여자로 국한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국내 4년제 여자대학 7곳 가운데 총장자격에 성별 제한을 둔 대학은 이화여대가 유일했다.
이화여대의 이 같은 결정으로 이르면 올해 이화여대에 남자총장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 14대 김선옥 총장의 임기가 7월 말에 끝남에 따라 오는 6월 쯤 개정된 규정에 따라 새 총장 선출 절차를 밟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남자총장과 함께 부수적인 결과도 예상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배경으로 총장이 학교 밖 교수 출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화여대의 총장후보자격은 학 외 인사에게도 열려있지만 1대 매리 스크랜턴 총장부터 대대로 학내 교수 출신이 맡아왔다. 이화여대의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나름대로의 진통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부응과 발전적인 차원에서 환골탈태는 아니더라도, 오래되고 견고한 전통의 벽을 스스로 허문 것은 이화여대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할 때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서서히 허물어져 가는 ‘禁男’의 메카였던 이화여대의 그 때, 김활란 총장 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자.
"때마침 종강의 벨이 울자 복도와 교정에서는 쏘푸래노의 웃음들이 때그르르 쏟아져 수도자의 방처럼 간소한 총장실을 울렸다. 자리를 일어서며 '참 선생님, 가족은 몇 분이나 되세요'하고 물었더니 '나 혼자죠. 아니 개가 두 마리, 붕어가 스물여섯 마리, 합하면 모두 얼만가?'하고 웃는다."
(201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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