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멀쩡하다. 그게 신기하다.
엊저녁 많이 마셨다.
여러가지로 그렇지만, 덩치 큰 몇 해 아래 후배와 대작 할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따라주는 걸 마다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자리로만도 그런데,
넉살 좋은 후배는 뒤에 앉은 분들과도 얘기를 터고는 잔을 주고받고 한다.
그 사이에 낀 나는 이럴 줄도 저럴 줄도 몰라하다 결국은 그 분위기에 끼어든다.
여든을 넘기신 어르신들이다.
말을 터놓고 보니 거제도 분들이다.
그러니 후배는 고향사람 만났다면서 더 신나해 잔을 주고받고 한다.
결국 어르신들 중 한 분은 우리 자리로 오셔 마셨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한 말씀이 기억에 남아있다.
"아내 죽고 3년 간 죽음의 시간을 보냈지요."
기력과 정신을 회복한지 얼마 되지 않다고 하셨다.
자녀들의 걱정이 많았다.
따님 한 분은 그런 아버지를 홀로 살게할 수 없다고 같은 아파트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 분은 그 연세에 불구하고 술을 잘도 마신다.
한 3년 간 죽을 생각만 하다 돌아보니 결국 술로 흐르게 됐더라는 얘기다.
그 분들과 헤어진 후 후배는 그여코 나를 또 다른 술집으로 끌었다.
그 술집엘 들어간 기억은 어렴풋한데, 그 다음부터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항상 이렇다.
집으로 어떻게 온 것도 모르겠다.
아침에 멀쩡해진 나를 보고 아내는 혀를 찬다.
엊저녁에 어떻게 온 지 모르겠냐고 묻는다.
모를리가 있나. 내 대답은 항상 이렇다.
거짓말이다. 상습화된 거짓말이다.
지갑을 보면 기억나지 않는 엊저녁의 행적이 보인다.
신용카드 영수증이다. 한 장 뿐이니, 엊저녁 술을 후배와 내가 교차로 계산한 것 같다.
기억을 떠 올리게 해주는 게 또 있다. 스마트폰이다.
그 속에 몇 장의 사진이 들어있다.
첫 술집에서의 파장무렵의 사진을 어떻게 내가 용케 찍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 장은 버스 안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이다.
버스 안 시계에 내가 탄 그 시간대가 명료하게 찍혀있다.
그러니까 나는 고주망태가 된 상태에서 대화동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고,
오는 도중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 시각이 밤 9시 58분이다.
분명 어떤 의도를 갖고 찍었을 것이다.
항상 그랬듯, 오늘 생각나지 않은 걸 어떻게 용케 미리 짐작해 찍은 것일까.
내 스스로 대견스러운 생각이 든다.
또 한 장의 사진은 성모마리아 상이다.
저 사진을 어떻게 찍은 것인가는 기억에 명료하다.
후배가 불러 대화동으로 나가기 전,
잠시 책상에 앉아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무슨 생각으로 찍었을까.
오늘 아침에 마리아 사진을 보니 신비로우면서 아늑하다.
한편으로 나를 일으키게 하시느라 애를 쓰시는 안스러운 모습으로도 보인다.
성모송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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