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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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elf

묵주기도

by stingo 2021. 4. 19.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다.

나이들면 쇠약해져가는 기억력 자체도 문제이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뭘 곰곰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버릇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것도

뭔가를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묵주기도가 일상화된지 1년이 넘었다.

묵주기도 5단의 요일별 주제에 따른 내용은 간단한 것이기에 기도문 책을 보지않고 외어서 한다.

하지만 요일별 주제는 헷갈릴 때가 많아 책상 달력에 표시해 좋은 것을 보고 할 때가 많다.

그러다 근자에 와서는 달력을 보지않고서도 할 자신이 생겼다.

나름 노력을 기울인 것인데,

예컨대 수요일 영광은 수영으로, 화요일 고통은 화고로 축약해 기억해 놓고 하는 것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월요일은 그렇지 빛, 그러니까 월빛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생각하고 그 주제로 아침에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런데, 오후 늦게 혼자 거실에 앉았는데 책상 달력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그 달력의 월요일에 표시해 놓은 요일별 기도 주제가 크게 부각되어 보였다.

그런데 거기엔 빛이 아니고 환희로 적혀있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 기도를 잘못 바친 것인데,

말하자면 월환을 월빛으로 잘못 기억해 그것으로 기도를 한 것이었다.

 

전해듣기로 묵주기도의 요일별 주제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니 그냥 대충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고 앉았는데, 아무래도 좀 찜찜하다.

할 일없이 그냥 멍청히 앉았는 것 보다는 새로 기도를 바치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다그침 같은 게 일었다.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어졌다.

환희를 주제로 한 묵주기도를 새로운 마음으로 바쳤다.

이쯤되면 내가 무슨 대단한 신앙심을 가진 것으로 보시는 분도 있을 것인데,

그건 결코 아니니 오해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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