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는 어떤 여인의 몸놀림이 날렵하고 빠르다. 야무진 걸음새다. 뭔가 웅얼대고 손짓까지 하는 게 전화 통화를 하며 걷는 것 같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아침에 이 길 위에서 마주친 그 여인이다. 점심 무렵 또 만난 것이다. 아침에도 좀 이상하다 여겨지는 여인이었다. 아침의 그 여인에 대한 기억은 호기심을 다그친다.
뒤에서 그 여인에게 다가갈 수록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큰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통화를 너무 오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할 말과 수다가 저리 심할까. 계단 올라가는 길 끝에서 돌더니 다시 반대방향으로 걸어온다. 그러면 나와 교행(交行)하게 되는 것이다.
방향을 바꿔서도 계속 혼자서 중얼거리며 걸어 온다. 가끔 목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것은 전화 통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혼자서 주절대는 말이었다.
서로 다가가면서 얼굴을 알아볼 만한 위치였는데, 그 여인 문득 나를 보더니 흠칫 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하는 모드가 언성을 높힌 대화체로 바뀐다. 언니라는 호칭도 있고, 도로 연수가 어렵고 어떻고 하는 게 분명 누구와 통화하는 언행이다. 마주치는 지점에서 나도 얼핏 보았다.
말쑥한 얼굴에 검은 테 안경을 꼈다. 그 여인은 나를 옆 눈길로 보고 지나치면서도 계속 무슨 말을 한다. 그런데, 나를 지나친 후 걸어가면서 하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린다. 대화체가 아니다.
넋두리 같기도 하고 욕설 같기도 하고. 이상해서 돌아다 봤더니, 두 손을 머리 위로 벌린 채로 무슨 춤 같은 걸 추고 있다. 그러더니 노래가 나온다. 두 손을 흔들어가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침에 만났을 때, 나는 동행이 있었다. 나는 동행에게 저 여자 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고, 동행도 그렇다고 했다. 혼자서 무슨 소리를 지껄여가며 걷는 게 이상했다.
혼잣말에 손짓까지 하며 걷는 게 전화 통화를 하며 걷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우리들은 그 여인 뒤를 따라 걸으며 그 여인 얘기를 하며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 길 끝 계단을 올라 우리 목적지로 갔다.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마리아수도회 성당'
아파트 뒤 전철역으로 이어지는 긴 농로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20여년을 새벽, 아침, 저녁으로 다니는 길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눈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도 있고, 얼마 간 보다 없어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항상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이른 아침에 그 길을 걷는 여자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거의 매일 새벽 아니면 이른 아침 마주치며 걸었다. 작년 이맘 때 쯤인가, 길 위에서 두어 번 그 여인과 교행하며 걷고 있는데, 어느 마주치는 지점에서 나에게 불쑥 손을 내밀며 뭔가를 건넸다.
네잎 클로버였다. "가지세요." 그 한마디 딱 하고는 나에게 불쑥 내민 클로버였다.
그 때 그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눈길과 표정이 따로 놀고 있었다.
휑한 눈길에 장난기가 느껴지는 웃음이 가득한 표정.
엉겁결에 클로버를 받고 뭐라 말할 기회도 주지않고, 그 여인은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여인은 그 얼마후부터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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