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들과 해변에 섰다. 어느 더운 여름 날 황혼 무렵이다. 바다 저편에 고래를 닮은 섬이 있다. 그 섬을 헤엄을 쳐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교 4, 5학년쯤 때였을 것이다. 그 해변은 살던 동네와 많이 떨어진 곳이다. 동네 쪽 해변에서 그 ‘짓’을 도모했으면 말릴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기에 일부러 동네와 떨어진 해변을 택한 것이다. 그 짓이 위험했기에 나름 장비는 챙겼다. ‘우끼’라는 사투리로 부르던 고무 튜브다.
나를 포함해 너 댓 명 쯤 됐던 것 같다. 해변에서 그 섬, 그러니까 우리들이 ‘고래돝섬’이라고 부르던 그곳까지의 거리는 한 1km 남짓했을 것인데, 석양 무렵이라 그런지 아득하게 보였고, 그래서일까 드러내놓고 말들은 않지만 짐짓 망설여하는 분위기가 피워오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깬 게 나다. “자, 가자!”고 했던가, 아니면 “요이 똥!”이라고 했던가 하여튼 내가 먼저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든 것이다.
그 때 그 나이로는 참 겁 없는 짓이었다. 바다로 뛰어들고는 물이 좀 차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바다 속 파도가 좀 셌다. 겁이 좀 났다. 머리를 물 밖으로 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안 보인다. 뒤를 둘러봤다. 뒤에도 없다. 동무들은 바다로 뛰어들지 않고 있었다. 소리를 쳤다. 빨리들 들어와라. 그러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돌아가야 하나, 계속 앞으로 헤엄쳐 나가야 하나. 판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순간, 판단은 사라졌다. 뭐랄까, 불안감보다는 이왕 이렇게 시작한 것 어떻게 되든 끝을 보자는 일종의 자포자기 심경이 그 판단을 허물었던 것 같다. 너희들(동무들) 보다는 내가 세다는 우쭐한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고래돝섬’을 헤엄으로 왕복했다. 헤엄쳐 오간 그 당시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냥 별 무리 없이 갔다 온 것이다. 잔뜩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잘못 돼 다리에 쥐가 난다든가 해도 믿을 것은 ‘우끼’ 밖에 없었다. 왕복에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른 채 갔다 왔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변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동무들은 내가 섬을 향해 헤엄쳐 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냥 기다리지도 않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들은 무슨 생각에 나만 그 바다에 남겨두고 떠나버렸을까. 동무들도 좀 두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잘못됐을 경우 그들에게 돌아갈 부담이 있었을 것이니까 어린 마음에 그냥 내뺀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더운 여름이면 그 때를 돌이켜보는 것은 여러 가지 상상을 보태면서 해 보는 생각 때문인데, 이게 아슬아슬한 느낌에 더해 시원하고 재미가 있다. 만일 내가 그 때 사고를 당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부터가 재미있다. 나 없으면 나는 모를 일이지만, 그 일을 도모하게 된 배경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누가 주도를 했는가에서 부터, 그런데 왜 나만 바다 위에 남겨놓고 다들 도망갔느냐로 사단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 때 동무들은 이제 한 두어 명은 친구들로 남아있지만, 그들의 향후 인생도 적잖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재미있다. 나에 한정할 경우,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 역시 아슬아슬한 감을 안기면서 더위를 식혀준다.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닌 게 더 재미있다. 뒤에 이어지는 얘기가 어쩌면 더 재미있다. 나의 ‘고래돝섬’ 왕복 헤엄은, 그 짓을 행하던 그 무렵의 얘기로만 결국 남아져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된 줄은, 말하자면 나 혼자만 몰랐다. 쉽게 말해 그 때 내가 했던 ‘고래돝섬’ 왕복 헤엄이 이제는 없었던 사실, 아니면 거짓된 사실로 돼가고 있다는 얘기인데, 나로서는 오히려 그걸 더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얘기인즉슨, 몇 년 전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인가 친구들과 바다 얘기를 주고받다가 내가 그 ‘고래돝섬’ 왕복 헤엄 얘기를 무슨 무용담처럼 꺼냈다. 친구들이 일제히 거짓말이라고 받아쳤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꼬마쯤의 나이에 어떻게 그 먼 ‘고래돝섬’을 헤엄으로 왕복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진실공방으로 들어갔는데, 나로서는 그 때 함께 도모했던 동무들이 증인이니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그 때 그 해변에 함께 있었던, 그러니까 지금은 친구 사이인 한 동무가 결코 그런 사실이 없었다며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버린 것이다. 나로서는 좀 분통 터질 일이었지만, 유일한 ‘증인’이 그렇게 나오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 때 거기에 같이 있었던, 후에 어렵게 수소문해 찾아낸 또 다른 동무가 그 사실을 확인해 줬지만, 그 동무를 잘 모르기에 믿을 수 없다며 철저히 묵살됐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결국 거짓말쟁이가 된 것이다.
사실이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분명히 내가 한 짓이고 사실이지만, 주변에서 아니라고 강변하면 그 사실이 거짓말로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경우 어떤 때는 그게 내가 지어 낸 거짓말일 것이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는 얘기다. 손가락 다섯 개 가진 사람이 육손 가진 사람들 틈에서는 병신이 되는 논리다. 이런 거 조차 나도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처지가 됐다. 인간사가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어떻게 살아가고 겪다보니 나도 그런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지난 2019년 5월 그 '고래돝섬'을 갔었다. 마산항에서 그 섬으로 가는 배 위에서 옛날 생각이 났고 그에 호기심이 더해졌다. 섬을 운항하는 배의 출발지는 내 어릴 적 헤엄 쳐갈 때의 그곳이니, 예전의 거리와 같다. 운항선을 운전하는 기관사에게 물었더니 바로 답이 나왔다. 1.6마일이라는 것. 그러니까 2.4km다. 어릴 적 보고 느꼈던 거리보다 훨씬 짧다. 그 쯤의 거리라면 국민학교 4, 5학년의 나이면 '우끼'를 갖고 헤엄쳐 갔다올 수 있을 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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