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고등학교 동기의 부음을 갑작스럽게 받았습니다.
느닷없는, 그러니까 경상도 말로 정말 '각중에' 였습니다.
안삼현이라는 동기. 저와는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기였습니다.
하지만 12년을 같은 학교를 다녔었어도 한 반이 된 적은 한번도 없으니,
그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서로간에 안면 정도 알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대강의 소식은 듣기도 했습니다. 광양 등지에서 교편생활을 오래 했다고 들었을 정도입니다.
이 동기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동기생 카페였습니다.
거기에 글을 올리는 걸 보고, 이 동기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안삼현 동기는 시인이었습니다. 어렴풋이 그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습니다만,
카페에서 그걸 확인한 것이지요. 시인으로 등단한지도 오래 된 중견시인이었습니다.
글이 좋았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글이었습니다.
동기의 시를 보고 추천과 댓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동기는 조용했습니다.
아마도 성품이 그러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카페에서 한 두어번 말이 오가기는 했습니다.
지난 3월인가, 어떤 끄적거린 글에서 가끔씩 들리는 서촌마을의 '백석'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주점을 얘기하며 보드카를 운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 동기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아, 백석 그곳에서 보드카 딱 한 잔만 먹었으면 좋겠다."
이 동기의 글을 보면 백석 시인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 댓글에 이렇게 답했었지요.
"언제든 환영. 키핑해 놓을 터이니까."
이렇게 주고받은 댓글이 그 동기와 저 간의 유일무이한 대화였습니다.
그 동기는 며칠 전 한 편의 자작시를 올렸습니다. 샹글릴라에 관한 시였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그리고 황망하게 이 세상을 떴습니다.
사람의 生死의 界가 이렇게 하루아침의 각중에 갈리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참 허무한 인생입니다.
저로서는 그 동기에게 보드카 한잔 못 권한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보드카를 한잔 가득 올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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