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만나뵙고 나름 속 섞여드린 잘못을 사죄드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선배가 근년간 이런저런 사단에 엮여있느라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우연히 옛 신문사 밴드에 들어갔다가 알았다.
그 선배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럴 수가 없다 싶어 어제 확인을 했더니, 그게 사실이었다.
나에게 부고는 물론이고 귀뜀 한번 없었다. 모두들 그리도 쉬쉬해야 할 죽음이었던가.
세상 인심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
어떤 사단이 어떻고 저렇고, 그에 따른 결과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밀조밀 맺어진 인연의 사람을 어쩌면 그렇게 황망하게 뜨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십 여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끝내 내 마음에 회한을 남기고 떠난 선배다.
부산 내려가면 형수라도 찾아 뵈어야겠다.
오늘 새벽 선배의 명복을 빌었다.
선배는 나의 고등학교 두 해 선배였고, 신문사 선배였다.
내가 뒤늦게 그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 그 선배는 편집국장이었다.
신문사 사장이 바뀌었다. 지원그룹사의 영향력이 컸다.
신임사장이 나를 불렀다.
신임사장으로서 제일 먼저 할 일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내 대답은 간략하고 강했다. 편집국장을 바꿔라.
사장이 물었다. 고등학교 선배고, 지금 가장 센 사람 아닌가.
내 대답은 역시 간략했다.
그 선배가 없어야 신문사가 산다.
사장은 부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배를 잘랐다.
5개월이 지나질 않아 그 선배는 다시 국장으로 복귀했다.
그 이듬 해 나는 신문사를 나왔다.
선배에 대한 원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감정의 표시도 하질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상하게도 그 선배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생겨갔다.
그 전에 나는 물론 그렇지 않았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인가 하는 저항감이 있었다.
그 저항심의 앙금을 풀어준 것은 역시 시간가 세월이었다.
易地思地가 그 한 고리였다.
2016년 어떤 장소에서 한번 뵐 기회가 있었을 때 내 잘못을 사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그러다 뒤늦게 선배의 부음을 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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