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중점으로 한 우리들 여행의 첫과 끝은 술이었다. 최소한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당연히 나이 탓일 것이다.
예전의 경우 산이 있는 목적지에 도착한 그 날 밤에는 당연히 술이 따랐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작취미성으로 산을 오르는 게 허다했다.
한라산을 오르기로 제주도를 가면서 친구들 각자의 어떤 결심(?) 같은 게 있었을 것인데,
그 중 하나는 당연히 禁酒였을 것이다.
하기야 비단 여행 뿐만 아니라 이즈음 술 마시지 않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양과 관계없이 여행 길에 술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점심 먹으러 서귀포 이탈리안 레스트랑인 '젠 하이드어웨이'에 갔을 때 잠시 술 문제로 수근들 거렸다.
파스타와 피짜에 와인을 마시느냐, 생맥주를 마시느냐. 결국 생맥주로 결정했는데, 그에는 가격 문제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술을 꺼려하는 다수의 의견이 보태졌을 것이다.
생맥주 500cc를 10등분 해 마셨는데, 그건 아무리 후하게 치더라도 술이라 할 수가 없다.
그 조차도 마시지 않은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송악산 올레길 9km를 걷고난 후 저녁 술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제주의 맛집이라는 '숨비소리'라는 생선횟집이다.
마츰 캐나다에 살고있는 한 친구가 마산 가는 길에 제주에 들리면서 그 집에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솔깃한 노우티스가 있었다. 발렌타인 17년짜리 한 병을 갖고 오겠다는 것.
내심 오늘 저녁은 한 잔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비소리' 이 집은 안주가 풍성해 술을 부르고 있었다.
캐나다 친구 도착하기 전 우선 소주로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들 역시 술을 좀 마다하는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 나 혼자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캐나다 친구가 왔다. 하지만 친구는 반겼지만 발렌타인 17년짜리 그 술에 그닥 신경들 기울이지 않는다.
결국 발렌타인은 한라산 백록담 등정 후 마시자는 지배적인 의견 속에 '키핑 모드'로 들여 보냈다.
백록담 산행은 고됐다. 한 친구가 조난 직전까지 가는 위급한 상황까지 생기면서 몸과 마음이 다들 지쳤다.
상태가 안 좋은 친구를 무사히 차에 태운 후 숙소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
이런 지경에 술이 당겨질 수 있을까. 그래도 어쨌든 콘도 안의 흑돼지 잘 하는 식당에 술판을 깔았다.
코로나 방역으로 두 테이블로 세팅을 하는 바람에 5명 씩 떨어져 앉았다. 다른 테이블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테이블에서는 그래도 소맥을 몇 잔씩 들이켰다.
한 친구가 돼지고기를 거의 세프 수준으로 잘 굽는 바람에 술을 동하게 한 측면이 있다.
그래봤자 토탈로 했을 때 각자 소맥 서너 잔이다. 그걸로 끝내고 숙소로 왔다.
두 개의 방에 각각 5명 씩 자리들 잡아 씻고 앉았다. 다른 방 친구들은 은 잘 모르겠다.
운전에 친구 구조까지 도 맡아했던 한 친구는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에 누웠다는 얘기만 듣고 있었다.
술은 역시 어떤 화제나 시비거리 속에 마셔지는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들 속에 내가 한 친구를 도발(?)한 측면이 크다.
일정을 짠 그 친구는 좀 황당하고 억울해 했을 것이다.
딴에는 김밥주문 아주머니에게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느라고 했는데, 내가 그걸 엉뚱하게
'과유불급' '과공비례' 'excessive communication' 운운으로 시비를 걸었기 때문인데,
전적으로 내 탓이다. 피곤한데다 술이 오르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고위공무원 출신의 한 친구에게 '官制'라는 말을 남용한 것도 일종의 도발일 터인데,
그 또한 내 취기에 의한 것이다.
아무튼 서로들 와인을 홀짝거리다 급기야 발렌타인을 꺼내 마신 건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이 마신 건 아니고 순전히 나만 그 독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리고 혼자 취하고 혼자 시비를 걸고 혼자서 거의 뻗었다.
다음 날, 마지막 일정을 끝내고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저녁을 귀경 비행기를 타는 제주공항 4층에 제주 향토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하며 술 한잔 하자는 것.
도착한 날, 아침으로 먹은 그 집 음식이 좋았다.
복작거리는 그 집에서도 자리문제로 따로들 흩어져 앉았다.
우리 자리에서 회장 친구가 꺼내 든 건 간밤에 마시고 남은 발렌타인.
내가 다 마신 줄 알았는데, 그게 꽤 남아 있었다. 그 술을 물컵에들 따랐는데, 웬일인지 몇몇 친구들이 입을 다신다. 간밤의 술로 인한 숙취로 고생을 한 나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렇게들 마시고 비행기를 탔다. 내 곁에 앉은 한 친구가 좀 이상하다. 하는 짓이 굼뜨면서 해롱대는 폼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발렌타인 그 술을 물컵으로 한잔 반을 마셨다고 했다.
김포에 도착하니 연착이라 지하철이 거의 끊겼다.
나는 그 시각에도 가는 버스가 있어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앉았다.
내 곁에 앉았던 친구가 거리를 왔다갔다 한다.
택시가 잘 안 잡히는 모양이다. 잘 가거라고 손짓을 했더니, 뒤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만 나불거리는데,
아무래도 많이 취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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