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오릉(西五陵)이다.
미리 작정하고 간 게 아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문득 서오릉 생각이 난 것이다.
집에서 가깝다. 9701 버스를 타면 한 30분이면 서오릉 입구다.
좀 일찍 집을 나서 둘러보니 사람들도 별로 없이 한적하니 좋다.
지난 번에 왔을 때에는 명릉 등 숙종과 그의 여인들이 잠든 무덤과 그에 얽힌 사연들을 살펴 봤는데,
오늘 눈길을 끈 것은 경릉(敬陵)이다.
경릉은 왕릉은 왕릉이지만, 조선의 정식 임금이 묻혀진 무덤이 아니라는 게 이색적이다.
왕세자로 있다가 왕위에 오르기 전 젊은 나이로 죽어 사후에 추존된 왕의 무덤이니,
곧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1438-1457)와 그의 부인 소혜왕후의 릉이다.
의경세자는 성종에 의해 덕종으로 추존됐는데, 그래서인지 경릉은 여느 왕릉과 다르다.
왕과 왕비가 묻힌 조선 왕릉의 쌍분은 통상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이 왕, 오른 쪽이 왕후의 무덤이다.
하지만 경릉은 그게 바뀌었다. 왼쪽이 덕종, 오른 쪽이 소혜왕후다. 그렇게 된 것은 지위의 문제 때문이다.
덕종은 임금이 아닌 왕세자의 몸으로 묻혔다.
그러나 소혜왕후(1437-1504)는 오래 살아, 후에 그 유명한 인수대비가 된 분이다.
그러니 지위와 품격 면에서 차이가 난다하여 무덤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무덤의 모습도 차이가 난다. 덕종의 묘는 그냥 평범한데 비해 소혜왕후의 그것은 왕릉의 규모로 조성돼 있다.
멀리서 보기에 그게 확인이 잘 안 된다. 특히 덕종의 묘는 그래도 어느 정도 눈에는 들어오는데,
소혜왕후, 즉 인수대비의 묘는 언덕 등성이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딴에는 그것을 보려고 한참을 올라가기도 했지만 결국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무덤의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은 있다. 일단 매주 마지막 수요일 능침을 공개한다고 공시돼 있었기에,
그걸 인터넷으로 신청해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서오릉 왕릉들은 모두들 줄을 쳐 놓아 가까이서 볼 수 없도록 돼있다.
능침을 공개한다는 것은 특별히 왕릉을 근접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또한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코로나 때문이다. 확인해봐야 한다.
다음에는 장희빈이 묻히 '대빈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계획이다.
해질 무렵이면 좋겠다. 소주라도 한 잔 부어 줄 생각이다.
사진은 예종과 안순왕후가 묻힌 창릉, 그리고 장희빈의 대빈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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