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뭔가를 확인하는 일 때문이다.
어제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지인의 죽음을 확인했고, 그게 미진해 재차 확인한 것이다.
지난 얼마 간의 시간, 그걸 나름으로 확인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서야 비로소 그 지인의 죽음에 대한 확인과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게된 것이다.
나를 비롯해 서울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은, 코로나로 인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됐다.
다시 한번 선배의 명복을 빌어본다.
오늘 아침, 그 선배의 딸과 통화도 이뤄졌다. 그 딸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십여년 전 선배가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 연수를 떠나면서 잠시 봤던 것이라 그럴 것이다.
지금은 부산의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고 쾌활하고 씩씩했다.
아버지는 김해의 한 묘원에 모셔져있다고 했다.
마산과 가까운 곳이니, 언제 한번 내려가는 길에 들러볼 예정이다.
그 선배의 죽음을 확인하느라 몇몇 옛 신문사 동료들과도 통화했다.
그런 일로 전화를 하는 건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선배와 나의 관계를 좀 알고있는 처지들로서는 다소 의아해 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알고있는 만큼 알려주었다. 돌이켜보면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의 관계를 되집어 얘기를 나누는 것은 거의 회상조의 것이다.
그 중의 한 여자동료는 남편을 떠나 보내기도 해 뒤늦게나마 위로의 말도 건넸다.
다 지나간 일이라면서도 마음 한 켠 슬픔이 남아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또 한가지 확인해야 했던 일은 한 다른 선배의 투병에 관한 것이다. 역시 엊저녁 술자리에서 언급됐던 것인데,
오늘 그 형수를 통해 구체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제 선배들은 용인 처인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그 선배로부터 ‘구출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어렵게 이뤄진 통화에서 그 선배는 자기를 제발 병원에서 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처지가 답답하고 딱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막상 형수를 포함한 그 가족들의 심정에 비할 수야 없을 것이다.
선배의 투병과 관련해 이런저런 어려움을 전하는 형수의 말은 거의 반울음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산 집을 비워둔 채 손자를 돌보는 와중에 쓰러진 반신불수의 남편의 병 뒷바라지까지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니 오죽할까. 위로의 말을 한다고 그게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입에 발린 백마디 말보다 보다 구체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강구해야할 것인데,
그래서 더 답답하고 조급해진다.
morning has broken. 아침부터 어두컴컴한 서재 한 쪽에 앉아 이런 일에 몰두하다보니
그 새 아침이 다 지나가면서 마음이 어둡고 개운하지가 않다.
툴툴 털고 일어나 심기일전삼아 큰 호흡을 해 보며 마음의 평온함을 다지고자 하는데 잘 안 된다.
거실로 나와보니 햇살이 밝다. 친구가 준 난이 망울을 터뜨리며 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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