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나의 네이버 블로그의 한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그 글은 오래 전에 쓴 것이다.
북한산 삐알에 사는 이 모 시인을 구기동에서 만났던 얘기다.
그 시인은 내 친구의 고교동기이기도 해 같이들 만났다.
나로서는 뵙고싶었던 시인이라 한 잔 술을 기울이면서
적잖은 얘기를 나눴는데, 자연 시를 중심으로 한 문학얘기가 많았다.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시인 얘기도 나왔다.
이 시인이 박 시인을 좋아하고 그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얘기 끝에 박인환 시인과 얽힌 얘기를 내가 꺼냈다.
박 시인의 자제분과의 재미있는 인연이 생각난 것이다.
인사동 어느 주점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다.
누군가가 자기 신발로 착각해 신고 가버린 것이다.
신발을 교환하기 위해 그 주점에서 다시 만났고, 맥주도 한 잔했다.
나중에 어떻게 알고보니 그 분이 박 시인의 아드님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있던 이 시인은 그 아드님을 잘 알고 있었다.
모 대학의 교수였고, 이 시인과의 고교와 대학의 후배로,
전공도 같은 불문학이었던 것이다.
그 묘한 인연의 얘기를 내 블로그에 썼던 것인데, 그게 2018년 여름이다.
근데 나의 그 4년 전 예전 글에 그저께 댓글이 달린 것인데,
다름이 아니라 박인환 시인의 손녀가 올린 글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신발을 바꿔 신고 갔던 박 교수의 따님이었다.
그 따님이 블로그 서핑을 하다 어떻게 내 블로그의 그 글을 본 모양으로,
아버지와 나와의 그런 인연을 아주 재미있어 하는 댓글이었다.
나로서는 전혀 뜻밖의 댓글이었고 고마웠고 반가웠다.
박 교수가 기억을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했고, 그 따님은 꼭 그러겠다고 했다.
블로그 한 지 10년을 넘겼으니 꽤 됐다.
나는 나의 블로깅 활동에 관한 한 좀 이기적인 측면이 있다.
나는 블로그를 나의 일상의 기록을 적는 곳으로 여긴다.
따라서 내 블로그의 글들은 대부분 시시콜콜한 나의 일상에 관한 것들이 많다.
그러니 글쓰기에 있어 댓글을 중심으로 한 피드백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론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민감한 시사문제를 건드리는 경우도 없잖아 있다.
이럴 땐 댓글의 뭇매를 맞기도 하는데,
그래서일까 시사문제에 관한 코멘트는 되도록이면 삼가고 있다.
이런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에 관한 기록을 누가 그리 관심을 갖고 봐 줄 것인가.
그러니 내 블로그 방문자도 별로 없을 뿐더러 글에 달리는 댓글도 거의 없다.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댓글이다.
그런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댓글에 가끔 감동을 안기는 이런 피드백이 있기에
내가 블로그를 계속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가만 생각을 해 보니,
내 블로그와 관련해 이런 댓글들로 인연을 떠 올리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언론계 대선배를 회고하는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을 본 손녀가 외국에서 연락을 해 온 적도 있고,
작년, 군 시절 임진강을 건널 때 문산까지 나를 호송해 어떤 인사병을 추억하는 글을 포스팅했을 때는
그 분의 아드님이 연락을 해 와 결국 아버지되는 그 분과 근 반세기만에 통화까지 이뤄지기도 했다.
블로그를 언젠가는 접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그게 언제 쯤일까에 대해서는 좀 막연하다.
나 홀로 생각을 하고, 추억을 하고, 감상에 젖고,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로 잡아도 될까.
욕심이 지나친 것인가.
https://m.blog.naver.com/darby4284/22112496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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