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능선 상의 한 봉우리인 칠선봉은 나에겐 어떤 징크스 같은 게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지리산을 갈 때 매번 그 앞에 머문다던가,
지나가면서 칠선봉의 형상 때문인지 뭔가 모를 묘한 느낌을 그 봉우리가 안긴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때때로 예상치 못한 사고를 야기시킨다. 이번에 그랬다.
4일 악천후 속 장터목까지의 이틀 째 종주산행, 칠성봉에 다다랐을 때였다.
세찬 비바람에 젖고있는 칠성봉을, 흐린 눈을 손으로 훔치며 그런 생각으로 올려보는데,
딛고있던 바위 한 귀퉁이가 신발끈에 걸렸다는 느낌과 함께 미끄러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찰라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은 흡사 느린 동영상같은 느낌으로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고,
그 순간은 마치 큰 화각으로 조망하듯 나에게는 생생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이어 일어날 사태에 몹시 불안해 하다 바로 앞에서 다가오는 바위에 얼굴을 부딪혔다.
”퍽!” 소리를 들으며 나는 사고를 직감했다.
부딪힌 얼굴 어딘가 분명 심하게 망가졌을 것이라는 느낌에 참담과 절망감이 밀려왔다.
부딪힌 얼굴을 들었을 때 친구 병만이가 바로 앞에 보였다. 내가 소리쳤다. “병만아! 피, 피, 피 안 나나!”
병만이가 내 그런 몰골을 보며 소리쳤다. “안 난다. 안 난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부딪힌 얼굴이었지만,
으깨졌거나 찢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왼쪽 눈 부위와 콧대 상단 부분이 욱신거리며 부어 올랐다.
그렇게 나는 칠성봉 앞에서 사고를 당했고, 그런 불안한 상태로 이날 장터목까지의 산행을 마쳤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응급조처를 하고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오른 손과 발이 욱신거렸다.
발 무릎 부분에 등산복이 찢어질 정도의 좀 심한 타박상, 그리고 손 몇 군데 찰과상이 있었다.
얼굴은 미간 왼쪽 눈 뼈에 타박상, 그리고 콧등에 역시 타박상과 찰과상이 있었다.
약간의 부기와 함께 통증이 있었지만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참을 만했다.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정신이 좀 가다듬어지면서 사고 그 후 상황이 생각났다.
병만이에게 출혈 여부를 확인한 후 정신이 좀 차려졌을 때, 나는 무엇을 했을까. 이런 행동을 했다.
병만이를 불러 왼쪽 내 가슴부위의 등산재킷 호주머니를 만져보라고 한 것이다.
병만이는 내가 하라는대로 호주머니를 만졌고, 그 안에 들어있는 그 무엇인가를 만졌다.
“이기 뭐꼬?” 병만이가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묵주다. 묵주.”
벽소령에서 장터목까지의 종주산행 이틀 째는 비바람을 맞고가는 우중산행이었다.
우중산행은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산행의 묘미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산행에서의 그것은 물론 낭만적인 요소도 많지만,
고생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빡센 산행임을 마음으로 다지고 임해야 한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로 그리 깊은 신앙의 신자가 못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면서도 나는 카톨릭신자로서 묵주는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 나름 최소한의 예의인데,
이번 지리산 산행에서도 물론 예외일 수가 없었다.
비를 많이 맞고가는 산행이니까 묵주를 잘 챙겨야한다는 생각을 출발 전에 했다.
손 들락거림이 많은 등산재킷 오른 쪽 호주머니에 넣어져있던 걸 가슴 쪽 호주머니로 옮겨놓은 것은,
그나마 좀 더 잘 챙겨야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장터목까지의 산행 전날 밤, 대피소 밖 세찬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 잠도 못 이루고 뒤척거리다 일어난 새벽, 나는 묵주를 챙겼고 묵주기도를 바쳤다.
묵주는 그 날, 내 가슴에서 심장처럼 나를 지켜주었던 것이라 믿고있다.
누가 견강부회라 조롱을 해대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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