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저격에 의해 별세한 게 1974년 8월15일이다.
나는 그때 군복무 중으로, 파주 광탄 1사단사령부 통신보급소 서무계로 있었다.
그날 육 여사 피격을 PX에서 TV로 직접 봤다.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고,
그날 하루 종일 그 여파로 인한 이런 저런 생각에 힘이 들었다.
사건 며칠 후인가, 야간 철조망 보초근무를 나간 게 밤 10시 경이다.
낮으막한 언덕배기 초소에 서면 가까이에 있는 벽제공동묘지가 어둔 밤중이라도 눈에 들어왔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공동묘지가 눈에 더 잘 환하게 들어오는 듯 했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에 공동묘지 쪽을 외면하곤 했었는데 잘 되질 않았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도 이상하게 공동묘지가 내 눈을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교대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서움에 떨고있었다.
그럴 즈음 내 눈을 따라다니는 벽제공동묘지 한 곳 지점에서
갑자기 밝은 회오리 형상의 불꽃 같은 것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저 게 뭘까 하는 의문보다는 엄청난 무서움이 갑자기 엄습해왔다.
그러면서 나는 거의 쓰러지듯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자세에서 정신마저 나가버린 듯 했는데,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정신을 차린 건 임무교대병이 나를 깨웠기 때문인데,
아마도 그 교대병은 내가 졸고있는 것으로 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고는 교대병이 뭐라뭐라하는 말도 듣질않고 그냥 내빼듯이 초소를 내려왔다.
내무반에 와서도 두려움은 가시질 않았다. 누구에게 말을 할 상태도 아니었다.
그냥 잠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샜다.
다음날 사무실에 나가 앉았는데, 옆자리 선임하사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어떤 방송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내용의 뉴스가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육 여사 피격 때 여고생 한 명이 경호원 오발로 사망했다.
그 여고생의 장례식이 어제 있었고, 유해는 화장돼 벽제공동묘지에 안장됐다는 것.
그 뉴스를 접하면서 전날 밤 벽제공동묘지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그 회오리 불꽃이 떠 올려졌고,
뭔가 막연한 가운데 생각이 정리가 되는 듯 했다.
아마도 그 불꽃은 비명에 간 그 여고생의 영혼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이후 나는 매년 8월15일 밤이면 그 회오리 불꽃을 생각하며
그 여고생의 명복을 나름으로 빌어오고 있다.
오늘이 48주년 기일이다. 황망한 죽음을 당한 그 여고생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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