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서울을 나갈 때마다 지나게 되는 종로의 '송현(松峴; 솔고개)'이 그 모습을 바꾸었다.
그러니 그야말로 이곳의 그라운드 라인이 바뀐 상전벽해의 모습이다.
그렇게 됐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다. 그러다 어제 나가보니 정말 그렇게 되어 있었다.
안국역 6번 출구로 나가 인사동으로 접어들 적에 늘 답답하게 보여지던,
꽉 막힌 느낌의 철옹성 같았던 미대사 관저가 확 날아갔고,
그 자리에 널찍하고 아름다운 꽃밭이 산뜻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몇년 전인가, 여기 인근에 많은 땅을 갖고있는 모 재벌에서 이 부근에 호텔을 짓겠다고 해
사람들이 연명으로 반대서명을 벌이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아무튼 비로소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니 여간 반길 일이 아닐 수 없다.
송현은 아주 오랜 땅이다. 조선 초 이미 '송현동'이라 했으니,
예전 소나무가 울창했던 이 땅의 역사는 그 보다 훨씬 이전 일 것이다.
예전에 여기를 지날 때면 항상 느껴지던 한 사람이 있었다.
조선 개국을 주도한 정도전인데, 그가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 바로 여기 송현이다.
정도전이 송현의, 그러니까 지금의 중학동 옛 한국일보 인근의 한 집, 더 구체적으로는
남 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다 이방원의 칼을 받고 죽어가면서 남긴 절명시에
송현이 나오는 것이니, 곧 "松亭一醉竟成空(송현방 한 잔 술에 끝내 물거품 되었도다)"라는
구절이다.
그랬으니 나로서는 비명에 간 그의 영혼이 송현 하늘을 떠돌고 있었을 것 같은
우중충한 느낌을 안기는 곳이었는데, 이제 말끔하게 정리된 그 터,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정도전 대감이
그나마 안식을 찾고있는지 모를 일이고, 나 또한 그렇게 됐으면 싶다.
정도전이 죽기 전에 지은 절명시는 題하여 '自嘲'라는 글로 전해져 온다.
操存省察兩加功
不負聖賢黃卷中
三十年來勤苦業
松亭一醉竟成空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온통 공을 들이고/
책 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저버리지 않았네/ 삼십 년이란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놓은 업적이/
송현방 정자에서 한 잔 술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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