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僧舞’의 故조지훈(동탁; 1920-1968)시인에게 시를 쓴 형이 있었다.
일찍 요절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집까지 낸 조세림(동진; 1917-1937)이 바로 그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으로 ‘세림시집’이 있다.
1937년 그가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죽은 후 동생인 지훈이 형의 文才를 기리기 위해 출간했다.
요절도 안타까웠지만, 그의 글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아꼈기에 책을 펴낸 것이다.
세림. 지훈의 누이동생인 조동민 여사의 회고에 따르면, 세림은 타고난 예술적인 기질이 대단해서
작품을 쓸 때는 몸부림을 치며 밤을 지세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13세 때 어린이 모임인 ‘꽃塔회’를 만들어 ‘꽃塔’이라는 등사판 동인지를 내는 등
소년시절부터 조숙하고 글재주가 뛰어났던 세림은 십대 중반부터
시를 쓰고 소설. 희곡 등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 새장 속에 파들거리는/작은 새와 같은 삶이여!
/힘 오른 팔뚝/퉁겨진 血管 속에 靑春은 慟哭한다”
대표시 ‘憂鬱’에서 보듯 그의 시들은 주로 일제강점기 농민들의 핍박한 생활상 등
일제하의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반항과 그로부터 기인되는 청춘의 우울함이 주조를 이룬다.
그는 자신의 글을 지훈에게 보여주며 내용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지훈의 습작에 대해서도
지적과 격려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지훈의 시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진다.
세림은 ‘꽃塔회’가 문제가 되어 일본경찰에의 의해 취조를 받고나온 후
악화된 치통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다 水風에 걸려 죽고 만다.
세림. 지훈 시인의 아버지가 제헌의원과 2대 의원을 지내다 납북된 조헌영 선생이다.
세림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서울에서 길을 재촉해 향리인 경북 영양 일월면의 주실마을로
가기위해 안동까지 내려왔으나 때 아닌 폭우로 다리가 끊기는 바람에
끝내 아들의 임종을 못 봤다는 슬픈 얘기가 전해진다.
요절한 세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훈도 4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다.
4남1녀 남매의 장남인 세림 아래로 동우가 있었으나 10살도 못 돼 죽었다.
막내아들 동위는 6.25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으나 아버지가 납북됐다는 소식에
향리로 돌아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비운의 가족사다.
이들의 누이동생인 동민(96) 만 살아남아 먼저 간 오빠들을 기리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두 시인 오빠들을 그리면서 노래한 시집
‘누이야, 오늘은 바람이’를 펴내기도 했다.
매년 5월이면 이들의 고향인 경북 영양 일월면 일월산 아래 주실마을에서
‘지훈예술제’가 열려오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개최돼 온 ‘지훈예술제’는
백일장 및 문학 강좌, 시낭송 등의 행사를 통해 조지훈 시인을 기리고 있는데,
여기에 세림도 함께 하고 있다.
(위의 조세림과 조지훈.조동민 사진은 경북 영양 일월면 주실마을의 '조지훈기념관'에 있는 걸 캡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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