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에 있는 고교동기들과의 가을소풍을 겸한 창덕궁 탐방을 갔을 적에 해설을 맡으셨던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열과 성을 다한 그 분의 해설은, 하지만 듣기에 좀 연민감이 들 정도로 목소리가 가늘면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표정도 좀 딱딱해 보였다.
그래서 이는 나 만의 생각이지만, 흡사 긴 병을 앓고 난 분이 아니신가 하는 느낌을 나는 가졌다.
긴 병을 앓고난 후에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이 분의 오밀조밀하고 조망감이 드는 창덕궁 해설은 그런 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는데,
이 또한 나만의 생각이라는 점을 밝힌다.
세상을 새롭게 보는 관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고있다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분의 꼼꼼한 해설을 들으면서 문득 이 분을 좀 웃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大造殿에서 내가 말을 건넨 건 그 때문이다. 대조전이 왕과 왕비의 침전이다. 대조전의 ‘大造’라는 말은 큰 功業을 쌓는다는 뜻이라는 것.
이 분의 여기까지의 대략적인 해설을 듣다가, 내가 불쑥 말을 꺼냈다.
대조전의 ‘대조’라는 한자말은 언뜻 뭔가 큰 것을 만들고 짓는다는 의미를 주는데,
그건 다른 말로 해서 왕과 왕비가 합방을 해서 후사를 만드는 일일 것이니 대조전이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닌가.
내 말에 해설사 그 분은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내 말을 거들듯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왕과 왕비가 합방을 하기 위해서는 온갖 것을 다 따져 택일을 받는다.
그 날이 오면 왕비는 자신의 처소인 융경헌 서온돌에서 왕의 침전인 흥복헌 동온돌로 살짝 건너갑니다.
그래서 일이 이뤄지고… 이 대목에서 이 분은 살짝 홍조를 띄었다.
내가 이 분의 말을 또 받았다. 에 또, 그러니까 큰 공업을 쌓는 곳이라는 대조전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아이,
그러니까 왕손을 생산하는 곳이 바로 공업 그 자체가 아닌가. 왕손 낳는 일 만큼 큰 공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했더니,
이 분은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크게 웃었다.
나는 대조전 여기서 이 분의 큰 웃음을 비로소 본 것이었다.
창덕궁을 갖다온 후 이 해설사 아주머니에 대한 이런 느낌을 글을 동기 카톡방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나를 타박(?)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 아주머니는 해설 시작 전에 감기를 오래 앓아 목소리가 안 좋을 것이니
양해를 구했다”며서 나더러 “그러니 그런 곳(창덕궁)에 갈 적에는 시간에 맞춰 제일 앞에서 들어야 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 이런 답장을 보냈다. “그려, 하기야 긴 감기 또한 긴 병이니 오십보 백보 아닌가 …”
#창덕궁해설사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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