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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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사람)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by stingo 2023. 11. 29.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한다. 더 엄밀히 말해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니, 그걸 만든 사람도 좋아하는 건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관해 많은 걸 알고있다는 건 아니다. 예컨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처럼,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해 들어보니 좋았고 그래서 자주 듣다보니 귀에 익숙해진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좋으니 자연 라흐마니노프에도 관심이 가지는 것이지만, 과문한 탓에 그가 어떤 음악가이고 어떻게 살다 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면 차이콥스키의 선율과 겹쳐지는 건 비단 나 뿐만 아닐 것이다. 둘 다 러시아 사람이니, 러시아 특유의 어떤 문화적 흐름, 이를테면 러시아적인 멜랑꼬리와 노스텔지어의 결을 함께 공유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저께 아침에 창밖을 보니 흐린 날씨에 비가 오고 있었다. 문득 도서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팩을 매고 능곡역까지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걸었다. 나는 라흐마니노프는 비오고 흐린 날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역까지를 걸으며 스마트폰에 담겨진 라흐마니노프를 찾아 들었는데, 두 번 전철을 갈아타고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연주자를 달리한 라흐마니노프를 들었다. 도서관에서 신간이 꽂혀져있는 서가를 기웃거리는데, 한 권의 책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였다. 레이카 미첼이라는 캐나다 작가가 쓴 것으로, 출간된지 얼마 되지않는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그 책을 집어들고 보면서 이날 아침은 뭔가 라흐마니노프와 이어지는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어제도 도서관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읽었다. 그러다 어느 페이지에서 이 사진을 발견했다. 안 그래도 내가 이 책에서 기대했던 건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와의 관계다. 조금만 시간을 내 찾아보면 같은 러시아인으로서의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지만, 왠지 그러기는 싫었고, 라흐마니노프를 다룬 책에서 그 걸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다 알려진 사실을 나만 내 방식으로 뜸을 들여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위 사진으로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어느 정도 러시아 음악계에서 명성을 얻어가고 있을 즈음인 그의 청년기 때 그의 방에서 찍은 것으로, 뒤의 초상화 속 차이콥스키와 함께 한 사진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차이콥스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고 있는 사진이다. 라흐마니노프 앞에 엎드려있는 애견과 묘한 상하구도를 이루고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다.

<라흐마니노프> 이 책을 접하며 달리 알아본 바로는 차이콥스키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적 스승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차이콥스키에게서 직접 음악을 사사한 적은 없다.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차이콥스키(1840-1893)는 나이로 보면 33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니 한 세대의 갭이 있는 것이다. 둘의 만남도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10대 시절 ‘모스크바음악원’의 재능있는 인재들 중의 한 명으로 차이콥스키를 만나게 된다.

물론 차이콥스키는 라흐마니노프의 재능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으면서, 라흐마니노프의 발전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고 그에 따른 음악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둘 간의 인연을 깊게한 계기가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졸업작품인 오페라 ‘알레코’의 공연을 볼쇼이 무대에 올리는데 차이콥스키가 큰 영향을 행사한 게 그것이었다. 그러니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로부터 간접적인 가르침을 받으며 음악적으로 서로 존경을 나누웠던 관계라는 점에서 ‘사숙(私淑)’ 관계였던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한 것 같다.  

1892년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피아노 트리오 ‘비가 G단조’는 그의 음악적 멘토인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기 위하여’에 깊이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둘의 관계는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인 친분으로나 무르익어졌다. 라흐마니노프는 그 이듬 해인 1893년 그의 나이 스무살 때 신작 피아노 듀엣 모음곡인 ‘환상곡 - 정경’을 차이콥스키를 위한 ‘헌정곡’으로 만들었고, 차이콥스키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차이콥스키는 그 해 11월 30일로 예정된 이 곡의 초연공연에 참석을 약속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는 돌연 11월 6일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비창’을 남긴 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당시에는 의문의 죽음이라 했지만, 차이콥스키의 죽음은 비소 중독에 의한 자살이었던 것으로, 1978년 소련 문화성이 공식 확인했다. 차이콥스키의 자살과 관련해서는 추문이 개입돼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문제를 다루는 건 차이콥스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삼가하고자 한다.  

이 소식을 접한 라흐마니노프는 극도의 상실감과 함께 이의 표현으로 사망당일 또 하나의 피아노 트리오를 쓰게 되는데, 이것이 부제로 ‘슬픔의 트리오 Trio Elegiaque’라는 부제가 붙은 ‘피아노 트리오 2번 Op. 9’이다. 차이콥스키가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을 위해 기념비적인 추모곡을 남겼듯이, 라흐마니노프는 그와 짝을 이룰 수 있는 예술적으로 쌍둥이라 할 만한 추모곡을 차이콥스키를 위해 만든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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