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와 샬리아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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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사람)

라흐마니노프와 샬리아핀

by stingo 2023. 12. 7.

역대 최고의 베이스 가수로 꼽혀지는 러시아의 페오도르 샬리아핀(Feodor Chaliapin; 1873-1937)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와 막역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그동안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라흐마니노프>를 읽다가 그걸 비로소 알게된 게 나로서는 과장을 좀 보태 흡사 벼락을 맞은 기분이랄까,
놀랍고도 신나는 일이다. 두 음악적인 천재가 제정 러시아 말기의 동시대를 살았을 것이라는 짐작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지만, 둘이 음악적 교류를 나누며 사생활에서도 친밀하게 지냈다는 건
내가 샬리아핀의 노래를 다시 음미하고 살펴봐야 할 어떤 단서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라흐마니노프와 샬리아핀이 1900년대 초 함께 찍은 사진.


라흐마니노프와 샬리아핀은 1873년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라는 것도 그렇고,
둘 간의 음악적인 교류와 교분이 제정 러시아 말기 어두운 전제왕정과 혁명의 태동기 러시아 문화계를
주도하던 '은 세계(silver age)'의 회색빛 흐름을 타고있다는 점, 그리하여 러시아의 전통적인
음악적 관점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어서 새삼 흥미로운 바가 적지않다.

라흐마니노프는 생애를 통털어 만든 가곡 83곡 가운데 다섯곡을 샬리아핀에게 헌정했을 정도로
샬리아핀을 높이 평가하며 아꼈다. 또 그가 10대 '모스크바음악원' 재학시절에 만들어
차이콥스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단막 오페라 '알레코'를 가장 잘 노래한 가수로
라흐마니노프는 샬리아핀을 꼽았다.

물론 샬리아핀도 라흐마니노프를 당대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로 꼽았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성 및 그와의 교분을 샬리아핀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샬리아핀과의 교재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하고 깊고 미묘한 경험 중의 하나입니다."

둘은 러시아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둘 모두 러시아를 버리고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공통점을 갖는다.
러시아에서 음악적 명성을 쌓은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즈음해 레닌에 반대하며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 정착해 살다가 1943년 맨해탄에서 죽는다.
샬리아핀은 혁명 초기에는 레닌을 지지했으나, 후에 그의 독재권력에 염증을 느끼고
1922년 유럽에 정착해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끝낸다.

내가 살리아핀을 처음 알게된 건 2000년대 초다. 그전까지는 그를 몰랐다.
그 당시 독일문화원에 부원장으로 계셨던, 지금은 고인이 된 벨츠 씨가 샬리아핀을 아주 좋아하시면서
나에게 소개해주는 바람에 알게됐고 그러면서 그의 노래에 심취했다.


2000년대 초 벨츠 씨와 설악산 봉정암을 등정하면서 찍은 사진.


한 계기가 있다. 어느 여름날인가 설악산 봉정암을 함께 갔었는데,
하룻밤을 잔 후 다음날 하산을 하다 폭우 속의 산길에서 길을 잃어 거의 조난 상태에 빠졌다.
그 때 벨츠 씨는 고령에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아 상태가 좋지않은 걸 내가 갖고있던 옷가지들을
꺼내 입히는 등으로 해서 모면할 수가 있었던 것인데, 벨츠 씨는 그걸 매우 고맙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 분이 자신의 한남동 자택으로 초대를 했고, 거기서 나에게 선물로 준 게
바로 샬리아핀의 노래가 수록된 CD였다. 벨츠 씨는 그 당시 수만장의 CD를 소장할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었는데, 넓은 집안 거의 전체를 슬라이딩 벽장으로 만들어 CD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벨츠 씨에게서 선물로 받은 그 샬리아핀 CD를 통해 나는 샬리아핀을 알게됐던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샬리아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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