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일어나는 어떤 일들이 필연적인 것인지, 아니면 우연에 의한 것인지는 각자의 느낌에 따라 다를 것인데,
나의 이런 경우는 어디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볼펜 하나에 이어지는 일들이 그런 것이다.
볼펜을 하나 주웠다. 색깔이 핑크색인게 아마도 여성이 쓰던 것 같다. 막연하게 주운 것이니,
주인 찾아줄 수도 없는 것이어서 그냥 테이블에 놓아두고 있었다.
그러다 뭘 급하게 쓸 게 있었는데, 마침 그 볼펜이 눈에 띄어 그거로 썼다.
그 볼펜을 쓰면서, 그리고 쓰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무슨 볼펜이 이리도 매끈하게 잘 쓰여지는가 하는.
그러면서 그 볼펜에 관심이 갔다. 사실 나는 글을 키보드로 쓰기 때문에 필기구를 쓸 일이 별로 없다.
그 볼펜을 비로소 그 때 보니 일제였다. 미쓰비시에서 나온 3+1의 ‘멀티 젯스트림(multi jetstream)’이라는 볼펜이었다.
그런데 좀 더 살펴봤더니 여러 측면에서 참 잘 만든 것이었다. 작동이 매끈했고, 디자인도 아주 세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글이 아주 잘 쓰여진다는 것이었다.
그 볼펜으로 글이 잘 쓰여지니까 그럴 것이다. 많이 쓰고 싶어지는 것이고, 그래서 모처럼 오랜 만에 손글씨를 써보았다.
예전에 나도 손글씨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 나오기 전엔 그랬다.
그러나 그런 필기수단들이 나오면서 손글씨와는 점차 멀어졌다.
글이 잘 쓰여지면서 또 그로 인해 손글씨 쓰는 재미가 생기면서 그 볼펜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볼펜심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볼펜의 리필심을 구해보고자 했다. 검색을 했더니,
나만 몰랐지 그 볼펜은 이미 애호가들이 많았고 그래서 쉽게 구할 수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며칠 전 여의도에 나갔다 마침 문구전문점이 보이길래 그 생각이 나 그곳에 들렀더니 리필심이 있어 구입을 했다.
집에 와 그 리필심으로 교체를 하려했다. 그런데 사이즈가 맞질 않았다. 알고보니 그 볼펜도 여러 모델이 있었고,
그에 따라 리필심도 각각이었다. 검색을 통해 좀 더 들여다 봤더니, 멀티(multi) 모델은 리필심이 달랐다.
어제 모처럼 한가한 날, 광화문 나간 길에 교보문고 문구점에 들렀다. 나는 젯스트림을 포함해 볼펜 브랜드들이 그처럼 많은 걸 처음 봤다.
미쓰비시의 젯스트림도 별도의 코너가 있어 리필심을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간김에 다른 모델의 젯스트림 볼펜도 두 개 샀다. 여의도에서 잘못 산 그 리필심의 볼펜이다.
집에 와서 심을 갈아끼우고 썼더니 필기감이 더 좋았다. 글이 절로 써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볼펜이 좋다한들 심이 다하면 번짐은 있게 마련이다. 젯스트림도 그럴까 호기심이 있었는데,
젯스트림도 역시 심이 다 해 액체가 끄트머리에 조금 남아있을 무렵엔 그랬다.
good to the last drop은 아니었던 것이다.
볼펜 하나 주운 것, 이게 새삼 손글씨와의 만남 등 이런 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이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건 그렇고 일제 미쓰비시 볼펜 좋아한다고 나더러 ‘친일파’라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젯스트림볼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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