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사무실에서 선배를 만나면 해병대 얘기를 많이 듣는다. 선배는 월남전에서 부상 당한 해병대 중위 출신이다. 나는 오늘도 선배로부터 월남전 얘기를 듣다가 월남 파병 당시 선배의 어떤 전우,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상관 한 분을 극적(?)으로 찾아 드렸다. 그 분의 얘기를 듣다가 그 분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가 있어 빠져 듣다가 한번 찾아보자고 나섰다가 찾은 것이다. 선배와 그 분과는 수십년 전부터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그 분은 월남전 파병 당시 해병 대위로 중대장이었고, 선배는 중위로 소대장이었는데, 둘 다 부상을 당한 인연이 있다. 두 분이 같은 중대는 아니었지만, 죽고 죽는 혼란한 전장에서 품앗이로 서로들 공백을 메워주다 인연을 맺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분은 당시 ‘종로쌍칼’로 해병대에서 그 위세(?)를 날렸다고 한다.
‘종로쌍칼’은 그 분이 1950년대 종로바닥에서 김두한의 부하로 활동하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분은 별명에 맞는 완력과 수완과 처신, 그리고 말쏨씨로 아주 유명했던 분이었다. 월남에서도 ‘종로쌍칼’로 이름을 날릴 당시의 얘기들로써 인기를 끌었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김지미 등 당시 일류배우들이 자기 앞에서는 꼼짝달싹도 못했다는 등등의 얘기다.
이 분은 부상을 입은 몸으로 귀국, 제대한 후 경찰에 투신한다. 경찰에서는 서울 중부서와 본청에서 기동대장을 역임한 후 청량리경찰서장까지 지냈는데 거기까지 였다. 1990년대 초 당시 정원식 총리가 외대에서 학생들로부터 밀가루세레를 받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문책을 당해 해임 당한 것이다.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경무관까지 무난히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당시 주변에서는 다들 짐작하고 있을 만큼 경찰에서도 인정을 받던 인물이었다.
필동 선배와는 이 분이 경찰을 그만 두고 사업을 하면서 자주 만났는데, 그 후부터 만남이 끊겼던 것이다. 오늘 어쩌다 이 분 얘기가 나오면서 선배는 이 분을 몹씨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서가에 있는 해병대 장교주소록 등을 꺼내 찾아보고, 또 알만한 주변 해병대출신 분들을 통해 연락처를 알아보고자 했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나는 우선 경찰기동대장 출신이라는 전력에 유의했다. 그러면 경찰기동대 출신들을 엮어보면 알 수 있을 게 아닌가하는 점에서다. 나의 고교동기 중에 중부서 기동대장 전력을 가진 경찰 출신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랬더니 좀 찾아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5분 만에 친구를 이 분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나에게 알려왔다. 선배는 곁에서 멀뚱하게 앉았다가 전화번호를 찾아다고 하니 반색을 했다. 그리고 전화.
근 30년 만에 통화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선배의 옛 상관 한 분을 찾아줬는데, 그러고 났더니 선배가 욕심(?)을 낸다. 그러면 혹시 월남전파병 당시 아주 친하게 지내던 미 해병 한 사람을 찾아줄 수 있겠냐고 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내가 찾아 준 상관을 통해 이름을 알아냈다. 켈리필드라고 했는데, 영어로 Kellyfield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필드 이 양반은 월남전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귀국한 후 역시 경찰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찾아준 ‘종로쌍칼’ 그 분과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매개로 예전에 미국에서 한번 만났다고 했다. 그 때 켈리필드는 미국 뉴욕주 올버니(Albany)시의 경찰서장으로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작업에 착수했다. 올버니 경찰국(Albany Police Department)로 들어가 어찌어찌 역대 경찰서장 명단을 확보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배에게 내일까지 찾아드리겠다고 했다. 찾아질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요즘 나는 월남전과 해병대 얘기에 빠져 사는 것 같다.
#ROK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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