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를 다시 읽고 있다. 코로나의 지겨움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 중 하나다.
조르바처럼 자유롭지 못한 처지의 나에게 난삽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자유로운 글쓰기'일 것이니 라는 느낌으로 읽어가니 예전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비교해 읽는 재미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것(2016. 9)과 2018년 초 민음사에서 나온 것은 원전이 다르다.
옮긴 분도 동서문화사는 박석일 교수가, 민음사는 김욱동 교수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타이틀의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 여러 권이 번역자를 바꿔 출간됐다.
'희랍인 조르바'도 그 중의 하나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은 그 원전이 칼 와일드먼(Carl Wildman)의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원전은 그리스어를 옮긴 번역이 아니라, 프랑스어로 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그리스어-프랑스어-영어-한국어의 세 단계를 거쳤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민음사 것은 피터 빈(Peter Bien)의 영어로 된 것을 옮긴 것이다.
이 두 책 간의 내용을 주마간산격으로 서로 비교해 읽으니, 그 맛이 또한 재미있다.
전반적인 내용이야 별 차이가 없겠지만, 스토리 전개과정이나 대화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그 맛이다.
김 교수의 것이 좀 더 해설적이고 세련된 것이라면, 박 교수의 번역은 맛깔스러움이 좀 있다.
민음사의 책은 주해를 달고있는 것이 동서문화사의 것과 다르다. 좀 더 해설적이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민음사의 것에 나오는 '자유인' 조르바의 '자유스러운' 여인 오르탕스가 말을 하는 부분인데,
그리스 어에도 느림체, 혹은 만연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번역본에는 그런 느낌의 말로 옮기고 있다.
원본에 그게 어떻게 나오는지가 궁금하다. 이를테면 박 교수의 책에 "참, 당신이 알기만 하면,
당신이 알기만 하면..."이라는 대목이 김 교수의 책에서는 "다앙신은 모올라요..., 다앙신은 모오른다고요..."로 나온다.
또 "우리 단둘이 있을 때는 그길 그렇게 불러요. 우리 날개를 서로 붙게 하소서', 하고 그는 말하지요. 호호호"를,
김 교수의 번역본에는 "우우리 두울만 있으면' 날개를 붙이자'고 해요. 히히히히."
참고로 이 대목은 오르탕스가 조르바와의 잠자리에서 다리를 날개에 비유하면서 키득거렸던 것을 회상하며 하는 말이다.
어쨌든 두 책을 번갈아가며 읽으니 시간은 걸리지만 재미는 더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카잔차스키를 이해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뼈저리게 느낀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난 자유롭다!"
거침없는 영혼의 자유인을 자처했던 카잔차스키가 자신의 무덤에 새기게 한 묘비명이다.
이 평범한 말조차 나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조르바를 읽으면 읽을 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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