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선배와 관련한 일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사진도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은 필동선배 사무실에서 선배 사진을 찍었다. 전문 사진가가 아니니 많이 찍은 것들 중에 골라서 써야 한다.
오늘 그 작업을 위해 라이카 카메라를 가져 갔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으니 특별히 라이카 카메라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배의 모습을 라이카 특유의 경조흑백으로 찍고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라이카를 갖고 간 것이다.
선배야 라이카가 어떤 카메라인지 잘 모른다. 아무튼 좋은 카메라라는 것만 설명을 해주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이상했다. 사진이 영 이상하게 나오는 것이다. 몇번을 찍어도 그랬다.
카메라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오랫 동안 사용을 하지 않았으니, 그에 따라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우려심이 들었다.
실내 조명이 너무 어두워 그런가 하며 밖으로 나가 찍어도 마찬가지였다.
피사체가 흐릴 뿐더러 뭔가 상당히 흔들리는 형상으로 사진이 나왔다.
그래서 일단 라이카를 내려놓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몇 장을 찍었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으니, 웬간한 것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모두 잘 나온다.
그러나 나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왠지 애착이 가질 않는다.
그냥 아무렇게나 찍어도 잘 나오니까 왠지 값싸고 흔하다는 관점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스마트폰으로 마구 마구 찍어도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고장’으로 여겨지는 라이카에 더욱 애착이 가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요모조모 살펴 보았다. 그래도 라이카 X-Vario인데,
어떻게 이런 이상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만지작거리며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문제가 있는 걸 발견했다.
조작을 잘못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셔터 스피드 다이얼이 오토(auto)에 놓여있질 않고 1/10에 다이얼이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진이 흔들리듯 나오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이얼을 오토에 놓고 찍었더니,
기대하던 소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찍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 봤더니, 조작을 잘못해 찍은 사진들 가운데 웬지 오히려 마음에 와닿는 게 있었다.
선배가 신문을 뒤적이는 걸 테스트 삼아 있은 것인데, 물론 흔들리는 형상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다시 보면서 별 생각없이 그냥 지워버리려 delete 버튼을 누르려는데,
순간적으로 다시 한번 사진을 보았더니 사진이 뭔가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었다.
뭐랄까, 8순 나이 선배의 흔들리는 마음을 잘 형이상학적으로 잡은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요 며칠 간 감기몸살을 앓다 오늘 출근을 하셨는데, 몸과 마음 안팍이 상태가 좋지 않다.
그걸 나는 선배의 몸과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니 그 사진이 비로소 나에게 그게 잘 표현된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 사진을 며칠 후 선배에게 특별한 심정으로 설명과 함께 보여줄 것이다.
선배의 반응이 궁금하다. 하지만 십중팔구 이럴 것이다.
“일마, 내가 8십줄 나이에 왜 내가 마음이 흔들리노, 이 자슥이요…” 하며 나에게 따져들 게 분명하다.
#필동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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