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덮고 잘 이불이 마땅찮다. 옛날엔 집에 널린 게 이불이었는데, 왜 이리 됐는지 모르겠다.
몇 번 이사 다니면서 내다 버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내가 새 이불을 장만하겠다고 하는 걸 내가 극구 반대했다.
집에 있는 짐들을 줄여야 할 나이에 새 이불을 산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내 말에 아내도 결국 수긍을 했다.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작은 방에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장롱이 하나 있다.
그 안에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실 때 덮고 주무시던 이불이랑 벼개가 있다. 나는 어머니 쓰시던 걸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올 겨울 오기 전, 날이 좀 쌀쌀해졌을 때 나는 어머니 이불을 꺼냈다. 어머니가 손수 솜을 넣어 만든 옛날 이불이다.
여러모로 지금 이불과는 다르다. 우선 무겁다. 그리고 두텁다. 덮으면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묵직한 무게감이 잘 적에 좋다는 얘기는 있다. 아내는 내가 어머니 이불을 덮고 자는 것에 특별히 반대 하지는 않았고,
다만 호청이 더러워지면 어쩔까를 걱정했다.
호청을 빤 후 다시 속이불에 맞게 일일이 바느질하는 게 억수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내 그 걱정에 나는 “걱정할 것 없다. 신랑신부 이불도 아니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 이불을 덮고 잔지 꽤 시간이 흘렀다. 벼개도 옛날 것으로 낡고 닳았지만,
다행히 커버를 바꿔 낄 수가 있는 벼개였다. 그래서 커버만 바꿔 쓰고 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날이 흘러갔다. 장례를 치러고, 아버지 묘 이장을 해 어머니와 합장을 하는 등 경황없는 날들이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지금도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죄스런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홀가분함 같은 것도 느낀다.
이제 비로소 이뤄졌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의 반백년 만에 한곳에 함께 영원히 머물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이랄까,
하여튼 그럼으로써 마음이 편해진 구석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나를 안온하게 하는 게 또 있다. 매일 밤 어머니의 체취를 어머니의 이불을 덮고 자면서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 이불을,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부터 쓴 것을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 무겁고 두터운 솜 이불 한채를 주시고는 떠나신 것이라는 생각이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문득 문득 드는 것이다. 매일 저녁 이부자리에서 어머니 이불을 덮고 자면서,
그러니까 저녁에서부터 밤을 지나 일어나는 새벽때까지 나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어제 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뵙던 그 모습이셨다.
요양원 엘리베이터에서 휠체어를 탄 어머니는 나에게 손을 흔드셨다. 손을 흔들던 나는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나를 보시며 뭔가를 얘기하시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 말씀이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어젯 밤 꿈에 그 모습이셨다. 나에게 손을 흔드시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데,
그게 무슨 말씀인지 나는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철아, 영철아, 잘 올라가거라. 그라고 날이 춥다. 잘 적에 이불 잘 덮고 우짜든지 뜨시게 자거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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