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 속에 집에 만 있으려니 사람이 궁상맞아 진다. 모 텔레비전 채널에서 재방해 주는 어떤 드라마를 우연히 보다가 궁상맞게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다며 옛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인데, 1997년 10월 경의 것이다. 그 때 재미있게 봤던 기억과 그에 겹쳐지는 추억이 범벅이 돼 나도 모르게 몰입해 보았다.
저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절, 나는 부산 본사에서 소위 '뺑이'를 치고 있었다. 저 해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친여지역 신문의 정치부장이라는 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걸치고 처세하기에 나 스스로 부담스럽고 소위 쪽이 팔리면서 한편으로 쪽을 챙겨야 하는 처지다.
내 생각과 행동이 따로 놀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래도 매일 신문은 만들어야 하고, 윗 사람하고 맞짱 뜨야 하고, 부서 기자들 챙겨야 하고, 피드백으로 독자들과 싸워야 하던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거의 매일 새벽 퇴근이었다. 숙소인 송도 여동생집까지 가기가 귀찮아 신문사 부근 술집에서 잠시 때우고 출근하기 일쑤였던 날들이다.
그 무렵 우연히 접했던 저 드라마를 보면서 잘 올라가지 못했던 집과 서울을 절실히 그리워했던 기억이 있다. 최불암이 아들 동규(박상원)와 수경(최진실) 간의 사이가 틀어진 걸, 수경과 그녀의 부모에게 항의하기 위해 밤 트럭을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장면이다. 최불암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에라, 나도 모든 걸 집어치고 밤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겠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오늘 마침 그 장면이 나온다. 그 때 그 충동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허허로운 웃음이 나온다. 얼마나 내가 싱거웠나 하는 일말의 자책감에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 시절이 무척 그리워졌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자들에 대한 추억도 나를 일렁거리게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도 그렇고 풋풋하던 시절의 차인표와 송승헌, 그리고 '전원일기' 복실이의 김지영의 모습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젊잖은 연기만 하는 최불암의 파락호 같으면서도 묵직한 연기는 가히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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