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찾던 묵주가 나왔다. 가톨릭 영세를 1979년 12월, 결혼을 앞두고 받았다. 그 때 처 할머님이 영세을 축하하며 주신 묵주다. 할머님이 뜨개질로 손수 짠 털실주머니에 담겨져 있는 오래 된 묵주다.
할머님은 "항상 이것을 지니고 다녀라"고 하셨다. 나는 그 당부에 따르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신앙은 나에겐 필요할 때만 찾고 구하는 일종의 도구였다. '냉담'도 수시로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 묵주는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버린 것도 몰랐다. 2006년 견진 받을 때 잠시 '이용'한 이후 잊고 살았으니까.
지난 3월 이 묵주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럴 일이 있었다. 찾아 보았다. 하지만 찾아지지가 않았다.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졌으나 나오지 않았다. 다른 묵주는 몇몇 있었다. 결국 그들 중 하나의 묵주에 매달렸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할머님 생각에서였고, 나에게 신신당부하시던 할머님이 주신 그 묵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다.
이 묵주는 큰 아이가 방으로 쓰고있는 서재에서 나왔다. 책상의 대형 모니터 뒤 깊숙한 곳에 먼지와 함께 있었다. 묵주는 기도서 등의 책자와 함께 있었는데, 아마도 2006년 견진 받은 후 그냥 거기에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것 같았다. 이 묵주를 발견하면서 가장 먼저 떠 올려진 게 할머님이다. 나에겐 할머님이 나타나신 거나 마찬가지였다. 반갑고 고마웠다.
이 묵주가 나에게 나타나기 이틀 전 꿈을 꾸었다. 물고기 꿈이다. 집 저수조에 싱싱한 각종 물고기가 퍼더덕거리며 득실대고 있는 꿈이었는데, 소위 꿈 해몽 상으로 길몽이었다. 은근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길한 일은 일어나질 않았다. "그렇지. 나에게 무슨 그런..."이라는 자조로 그 꿈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런데 이 묵주를 찾은 그 다음 날 퍼뜩 그 꿈이 생각났다. 길몽이라던데, 그러니까 그 꿈 덕에 묵주를 찾게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좀 우스웠다. 그렇지만 이즈음 내가 좀 그렇다는 걸 내 스스로 잘 안다. 그래서 그러려니 여기고 있다. 그 꿈과 묵주를 연계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길몽 등에 따른 복은 없다고 자조하는 처지에서, 그나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자위 정도의 생각은 든다는 말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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