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書生, 속된 말로 ’먹물’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글 쓸 일은 많습니다. 편지도 써야하고 생활적으로 계약서나나 각서, 확인서 등을 쓸 때도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는 뜸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도 써야합니다. 단계를 좀 높이면 일기도 포함되고, 일상을 담는 수필류의 글들도 간혹 쓰게 되지요. 디지털시대라는 이즈음에는 글 쓸 일이 더 많고 다양해졌습니다. 이른바 소통을 위한 소셜 네트워킹의 각종 글쓰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어느 시대, 남녀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글을 쓰지만, 글을 쓰는 방법은 각자의 습성이나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각종 필기구를 통해 손으로 쓰는 방법은, 인류가 문자를 알게 된 이후부터 써온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이렇게 쓰는 걸 손글씨라고 하고 좀 어려운 말로 일컬어 ’육필(肉筆)’이라고 하던가요. 또 다른 것으로는 자판기(字板機), 그러니까 키보드(keyboard)를 이용해 쓰는 기계적 방식입니다.
크게 이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어떻게 쓰는지는 각자의 취향이나 습성, 그리고 익숙도에 달렸있다고 봅니다.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쁜 우열을 논할수가 있을까요. 그것도 쓰는 사람 각자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육필로 잘 쓰지면 그게 좋은 것이고, 자판기가 편하면 그게 좋은 것이지요. 물론 두 가지를 양립해 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때 그때 편한 방식으로 써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디지털시대 글쓰기에서는 육필이 좀 딸릴 경우가 있지요. 이메일이나 소셜 네트워킹의 수단인 트윗, 페이스북 등은 모두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기계적 수단으로 글을 써야지 육필로 대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로 구분짓기도 합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육필을 선호하고 젊은 사람들은 자판기가 대세이지요. 물론 이게 절대적인 구분은 아닙니다.
언젠가, 유명한 소설가 한 분이 텔레비전에 나와 글쓰기와 관련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글을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고 물었더니, 원고지에다 펜으로 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그럴 듯 했습니다. 자판기로 두드리면 글을 쓰는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풀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안 쓰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펜을 강하게 잡고 원고지에다 한자 한자 쓰내려 가면 쓰고자하는 의지가 그대로 글 내용에 전달돼 바라던 글이 나온다는 것인데, 대충 그런 내용으로 들었습니다.
글쎄, 언뜻 듣기에는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자판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 분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소설가라는 점이 일단은 설득력을 갖게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주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좀 견강부회한 점도 없잖아 있어 보입니다. 그 말도 결국 자기에게 익숙해진 글쓰기 방법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하는 생각인 것이지요.
나는 물론 자판기로 글을 씁니다. 물론 자판기가 드물던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PC 등 키보드가 딸린 글쓰기 도구가 나오면서 그 쪽으로 간 케이스이지요. 기자로 밥을 먹고 산 입장에서 보자면 시대적인 추세를 따른 것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손이 떨리는 수전증 때문입니다. 수전증의 이유와 원인은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원고지 메우기가 정말 짜증스럽고 귀찮았습니다. 특히 시간을 다투는 마감시간 즈음엔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PC와 노트북으로 갈아탔습니다. 그게 1992년입니다. 물론 펜으로도 썼고 지금도 펜을 지참하고 다니며 씁니다. 예전 기자시절에는 여러 취재 때문에 당연히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급한 생각이 났을 경우 메모를 적을 때도 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외는 예외 없이 모조리 자판기로 씁니다.
다른 불가피한 측면이 또 있습니다. 이것도 수전증과 관계가 있지요. 생각의 정리 및 전달이 육필보다 났다는 점입니다. 글은 궁극적으로 생각을 옮기는 일입니다. 큰 바탕의 생각, 즉 프레임과 순간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작업이 글쓰기입니다. 머리 속 생각이 언뜻 떠 올랐을때, 이것을 빨리 글로 옮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손과 펜에 전달되기 전에 잘 잊혀집니다. 수전증, 그러니까 손이 떨리고 글이 잘 안 쓰여지는, 혹은 안 쓰질 것이라는 부담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판기 앞에 앉으면 손이 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하지요. 그래서 육필보다는 생각의 전달이 비교적 더 잘 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입니다만, 만일 생각과 발상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으면 나는 아마도 대문호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50% 정도만 옮겨도 ’대박’이라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설 제일 잘 쓰는 사람은 하고있는 말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사람이라는 것. 하고 있는 말, 그게 생각이고 발상이 아닐까요. 그러나 나의 이런 견해도 궁극적으로는 위의 소설가 그 분 말씀과 다를 게 없습니다. 견강부회인 것이지요. 글자와 글을 쓰는 방식은 결국 습성과 취향, 그리고 익숙성에 따른 선택의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의 글자쓰기, 혹은 글쓰기를 좋아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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