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부자리 속에서 가만이 생각해보니 오늘이 무슨 날이다. 무슨 날? 그렇지. 결혼 41주년. 어제 쯤 그게 생각나야할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40년을 넘어가니 그리 되는 모양이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내는 아직도 새근 새근 잘 자고 있다.
41년 전 새벽 이 시간 쯤이 기억난다. 간 밤에 친척들과 마신 술로 작취미성 상태에서 찬 물에 머리를 감았다. 그렇게 하고 허둥지둥 시청 옆 프레스센터 결혼식장으로 갔다. 그때까지 내 모습을 거울로 보질 않았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내 머리가 가관이었다. 찬물에 '빤' 머리칼이 빨랫줄처럼 그대로 뻗뻗하게 서 있는 게 말 그대로 산발의 모습이었다.
예식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기억에 없다. 한 가지는 있다. "신랑 입장!" 소리를 들었을 때 뜬금없이 한 각오로, 이 결혼식을 '반드시 해 치우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그 얼마 전 김재규가 10. 26 시해를 결심하면서 했던 그 말을 그대로 되새겼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다. 작취미성이었으니, 어서 빨리 해 치우고 어디 가서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어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하기야 그 때는 그런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내 일신상의 문제도 10. 26으로 헝클어져 앞날을 예측할 수 없기도 했고.
사진은 신혼 때인 1980년 3월, 그러니까 '서울의 봄'이라는 시절, 아내와 덕소에서 찍은 것이다. 아내 얼굴을 이렇게 사진으로 공개하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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