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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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生

by stingo 2020. 5. 28.

1951년생 토끼띠. 6.25 전쟁의 와중에 태어났기에 어려운 세대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들은 정작 그 어려웠던 시절에 관해서 잘 모른다. 물론 어릴 적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은 적은 있다. 하지만 그런 얘기들은 추억이라는 스크린으로 다소 포장된 것들이기에 생각하기 나름인데, 나로서는 그 시절이 그저 몽롱하게 느껴질 뿐이다. 대구 대봉동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몇 가지 기억은 있다.

 

먼지 자욱한 신작로 한 켠에 서 있던 미군 지프에서 키 큰 미군이 내려 나를 들어 올린다. 겁에 질린 나에게 그 미군은 파안대소하며 초콜릿을 안겨준다. 무지 더웠던 한 여름, 방천이라는 냇가 평상에 또래들끼리 모여앉아 썩은 사과를 다퉈가며 먹고 있다. 남겨진 그 시절의 한 흑백사진에는 휴가를 나왔는지, 군복 차림의 아버지가 나를 안고있는 외할머니와 함께 멋적게 웃는 모습이 담겨있다. 대충 이런 것들이다. 이런 얘기와 사진들은 달콤한 것들이다.

 

1970년대 초에 고 은(시인으로 지금은 성추문 등으로 엉망이 된)이라는 사람이 쓴, 그 시절을 얘기한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이름하여 ‘1950년대’라는 책인데, 그 책 또한 어려웠던 그 시절이지만, 그런 속에서도 오히려 구가됐던 낭만이 시인의 글로 승화된, 이를테면 그 시절의 ‘송가’ 정도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그 책을 보면서도 우리 세대가 어려웠다는 생각은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 세대가 전쟁과 피난의 고초 속에 태어났기에 많이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은 더 그러겠지만, 예전의 인구 비중에서도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었다. 이런 것은 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커 오면서 다른 세대와 달리 유독 학교에 들어가는 입시에 변화를 많이 겪은 세대라는 것. 중학교 들어갈 때, 국어. 산수 두 과목과 체력장으로 시험을 치렀고, 대학 들어갈 적에는 1950년생에 이어 두번 째로 예비고사라는 것을 치러기도 했다. 또 70학번으로, 대학 졸업 때 논문을 써 통과돼야 졸업이 되는 졸업논문제라는 것을 겪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다른 세대들에 비해 자라고 커 온 과정이 좀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류의 경험은 다른 세대라고 없을 리 없으니, 1951년생들이 유달리 독특한 세대라고 규정짓기는 좀 그런 것 같다.

 

언젠가 모 신문에 1951년생에 관한 한 편의 글이 올랐다. 좀 뜬금없는 글이었다. 우리 세대에 관한 글이라 반가운 측면도 있었지만, 그런 글이 왜 갑자기 게재됐는지 좀 의아스럽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 글을 쓴 분도 짐작하기에 우리 세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세대라면 이미 정년퇴직이었을 것인데, 그 분은 아직도 그 신문사의 현직 타이틀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글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6.25 전쟁 때 태어난 1951년생들은 죽기도 많이 죽었거니와 전시의 어려움 속에 제대로 된 영양분 섭취도 못해 허약한 체질이 많았다는 것이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의 그 세대 사람들이 유독 건강이 안 좋은 상태라는… 그러면서 이 글은 그 세대 사람들에게 화이팅을 주문하고 있다. 결론을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니 고맙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세대들이 얼마나 허약해 보였기에, 한 유력신문의 칼럼에서까지 “아, 1951년 생”이라는 탄식류의 제목으로까지 운위되고 있을까하는 자괴심이 들기도 했다.

 

이런 자괴감은 그 즈음에 아깝게도 타계한 탈렌트 김 영애 씨의 부음을 접했을 때와는 좀 달랐다. 1951년 생 갑장인 김 영애 씨의 부음을 접했을 때 느낀 심정은 동병상련이었다. 아, 우리 토끼띠들도 이제 한 두어 씩 세상을 뜨구나 하는. 이에 비해 ‘아, 1951년 생’ 이 칼럼은 우리 세대 전반에 관한 좀 어두운 측면의 글이라 느낀 바가 달랐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나이로 70세다.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제는 이미 현직에서 물러 나, 인생 만년의 조절기에 들어선 나이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국가와 사회와 가정을 위해 일 한 세대다. 1970년대 경제성장의 시기에 온 몸을 바쳐 열심히 일 한 경제성장의 주역이면서 그 성취감을 맛 본 세대이기도 하다. 그 성취감의 기억에 유달리 떠 오르는 것은 엉뚱하게도 ‘쌀 막걸리’다. 쌀로 만든 막걸리가 처음 나온 날, 온 나라는 쌀 막걸리에 취했다. 쌀 막걸리에 취해 종로거리를 활보하던 추억은, 그 시절,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뤄 낸 성취감에 대한 일종의 한 풍경으로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우리들로서는 어려운 이 시기, 이 땅의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기억을 공유해주고 싶다. 칼럼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 세대가 여러가지로 어렵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통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나온 세대로, 결코 허약한 것만은 않다는 점을 말 하고 싶다. 아직 건강이 어떻고, 아직 현직에서 일하고 있고 운운으로 이 점을 강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험이 있다. 말하자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를 알고있는 세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은, 우리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면서도 이를 철학과 지혜로 승화시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전하고 함께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1951년생 토끼띠, 우리들은 그리 허약하지 않습니다.

 

어느 사이트에 1951년 생 연예인들의 사진이 있기에 올려 봅니다. 좀 오래 전 것인데, 이 가운데서도 김영애, 김자옥 등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참고로 유인촌, 한혜숙, 이미배도 1951년 생 갑장들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5/20170425035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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