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The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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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The Post)'

by stingo 2021. 3. 11.

근자에 영화를 적잖게 본다. 코로나와 넷플릭스 덕분(?)일 것이다. 구독 초기 넷플릭스 영화 리스트를 대충 봤을 때는 내 눈에 연쇄살인, 치정, 폭력물들만 보였는데, 좀 부여잡고 보니 볼만한 게 꽤 있다. 엊저녁에 본 '더 포스트(The Post)'도 그 중의 하나다.
미국의 일간신문 워싱턴포스트에 관한 영화다. 좀 알만한 사람이면, 워싱턴포스트 하면 당연히 1972년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릴 것이고, 그래서 이 영화도 그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워터게이트 보다 1년 앞서 일어난 '펜타곤 페이퍼' 보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보도와 관련해 권력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워싱턴포스트의 언론 정신을 당시 사실을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에서는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둘러싼 긴박한 장면과 함께 1970년대 신문 저널리즘 관점에서 이런 저런 볼 꺼리들이 많다. 예컨대 취재-기사작성-데스킹-편집-조판-인쇄 과정을 통해 신문을 촉박하게 만드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한 때 신문사 말석에 있었던 연고 때문인지 나름 추억에 젖게 해준다.
한편으로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기분도 들게 한다. 우리나라의 척박하면서도 구질구질한 언론상황 때문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주구로 전락한 게 우리나라 언론이 아닌가. 아무튼 이 영화는 워싱턴포스트를 중심으로 한 언론의 자유를 주제로 한 것이다.
영화 내용도 그렇지만, 배역이 좋다. 벤 브래들리 국장역에 톰 행크스, 그레이엄 발행인 역에 메릴 스트립. 게다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았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원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재미와 함께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순전히 이런 스탭과 캐스팅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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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의 젖꼭지를 빨래 짜는 기계에 넣고 짜주겠다"(존 미첼)

"난 나의 기자들만 믿는다. 젖꼭지 부분만 빼고 그(미첼)가 한 말을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모두 다 기사화 해!..."(벤 브래들리)

두 말 가운데 위의 것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이를 취재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에 대해 닉슨과 그 측근들이 유형무형의 갖은 방법의 탄압으로 워싱턴포스트를 옥죄이던 와중에, 그래도 워싱턴포스트가 호락호락하지 않자 닉슨의 최측근인 존 미첼(John Mitchell) 당시 법무장관이 캐서린 그레이엄(Katharin Graham)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을 상대로 퍼부었던 욕설이고,

아래 말은 미첼의 이 말을 전해 들은 당시 워싱턴포스트 벤 브래들리(Benjamin Bradlee) 편집국장이 기자들에게 미첼을 포함해 권력의 어떤 위협에 절대 꿀리지 말고 취재 보도하라고 당부한 대목이다.

엊저녁 넷플릭스에서 '더 포스트(The Post)'라는 영화를 본 후 언뜻 생각이 나 이 두 말이 적혀있는 옛 메모장을 뒤적거렸더니 용케도 있었다. 여성 비하의 좀 얄궂은 표현이 있지만,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권력의 횡포, 그리고 그에 맞선 언론과 언론인의 결기, 이 두 가지를 상대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표현이다. 꽤 오래 전 예비 저널리스트들을 가르칠 적에 언론의 역할 강의용으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The Post'는 말 그대로 워싱턴포스트를 부르는 말인데, 그 호칭에 권력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지켜 낸 워싱턴포스트의 당당한 위상이 그대로 녹아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세계 언론자유의 기념비 같은 존재의 언론사다.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을 터뜨려 보도한 언론사다.

그러니 워싱턴포스트 하면 워터게이트, 워터게이트 하면 워싱턴포스트로 흔히들 연결짓는다. 워터게이트 하나만으로의 워싱턴포스트가 아니다. 그 이전인 1971년 더 큰 게 있다. 트루먼부터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에까지 이르는 30년 간 비밀리에 감춰져온 미 행정부의 베트남전쟁 개입흑막이 담겨진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를 사운을 걸고 보도한 게 워싱턴포스트다.

'The Post'는 바로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다룬 영화다. 그레이엄 발행인과 브래들리 편집국장이 주역으로, 이 둘은 1년후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 두 기자와 함께 워터게이트에서도 역시 주역이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그 내용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워터게이트 때도 그랬지만, 그레이엄 발행인은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자신의 모든 것과 사운을 건다. 워터게이트 때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적으로 '펜타곤 페이퍼'가 워터게이트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를 주제로 메가폰을 든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펜타곤 페이퍼' 쪽에 무게를 두고 'The Post'의 주제로 삼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워싱턴포스트와 언론의 자유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그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경쟁사와의 숨막히는 취재 경쟁과 권력의 집요한 방해공작, 그리고 그 어떤 가치보다 언론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편집국장과 회사의 운명을 걸어어 하냐, 마냐의 기로에 선발행인의 번뇌 등이 서로 엮어지면서 영화는 보는 재미를 더 한다. 재미의 측면에서 보자면 다소 엇갈릴 수도 있다. 언론 쪽에 관심이 있는 쪽과 없는 쪽의 경우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미 대법원에서 워싱턴포스트 쪽의 손을 들어주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눈물도 좀 핑 돌았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가끔 씩 우리나라의 척박하고 기막힌 언론현실이 떠 올랐다. 그 때마다 애써 잊으려 했다. 영화 속에 빠진 나를 자꾸 빼 내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름의 박수와 찔끔한 눈물은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예의상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장면 사이사이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 기억될만한 말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니 기억에 남는 말이 떠 오르지 않는다. 한 가지 겨우 기억해냈다. 대법원 승소 장면 후인가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의 어떤 기자인가가 읊조리는 말이다.

"언론은 피치자(국민독자)를 위한 것이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의 그레이엄 발행인과 브래들리 편집국장

 

 

 

 

 

'펜타곤 페이퍼' 보도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 손을 들어준 미 대법원 판결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7월 1일자 보도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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