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리아핀, 샬리아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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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리아핀, 샬리아핀

by stingo 2020. 5. 30.

러시아 관련 책은 역시 어렵다. 읽기는 읽는데,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워낙 과문한 탓일 것이다. 수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많은 이름들은 대부분 생소하다. 그러니 아는 이름이라도 나오면 반갑다. 그러나 몇 안 된다. 톨스토이, 푸쉬킨이니 투르케네프, 체홉, 고리키, 도스토예프스키 등 세상에 널리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음악 쪽에서 알만한 인물은 겨우 한 두 명이다. 무소르그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 역사 쪽으로 오면 더 그렇다. 그 유명하다는 '러시아 국가의 역사'를 쓴 카람친도, 그 책을 본 적이 없으니 나에긴 생소할 수 밖에. 보리스 고두노프도 그렇고 네크라소프도 그렇다.

 

 

Feodor Ivanovich Chaliapin(1873-1938 )

책을 반 쯤 읽은 상태에서, 어제 한 인물이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 좀 아는 사람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표도르 샬리아핀(Feodor Ivanovich Schaliapin, 1873-1938). 노래하는 사람으로, 20세기 최고의 베이스(Bass)로 꼽히는 성악가다. '러시아의 전설'로도 불리는 가수다. 이 사람이 그 책에서 언급되기를,

​"샬리아핀의 젊은 시절인 1896년 그의 후원자이자 성 페테르스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주인 마몬토프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마몬토프는 스트라빈스키 같은 중견가수들이 그가 주목받는 것을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프스코프의 소녀'에서 뇌제 이반 역을 맡겼다" 는 내용이다.

​샬리아핀이 1873년 생이니까 1896년이면 그의 나이 23살 적의 일이다. 딱 다섯줄 언급된 샬리아핀 부분을 읽으면서 좀 감개무량했던 것은, 까맣게 느껴졌던 제정 러시아가 가깝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연찮은 인연으로 알게 된 샬리아핀과는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나름 동시대인으로 생각해왔는데, 이 양반이 혁명의 태동기, 러시아 문화의 한 주역이었음을 새삼 알았기 때문이다.

10년도 훨씬 전 쯤이었을 것이다. 한 여름, 친구와 설악산 봉정암을 가는데, 독일인 한 사람이 동행했다. 독일문화원에 계신 분이었는데, 나이는 우리들보다 훨씬 많았다. 봉정암에 올라가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내려오는데, 하산 길이 험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기도 하면서 내려갔는데, 그 과정에서 동굴에서 피신도 하고, 아무튼 이 분이 연세도 있고해서 무진 고생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좀 도왔다.

서울로 돌아와 얼마 쯤 후, 그 분으로부터 선물을 하나 받았다. CD였는데, 아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게 바로 샬리아핀의 것이었다. 러시아 전통민요를 부른 샬리아핀의 씨디였다. 열 몇곡이 들어있는 노래 중 흥흥거리며 리듬을 알 수 있는 노래는 서너곡.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들의 노래(The Song of Volga Boatman)'와 제목은 알 수 없지만, 대학 다닐 때 번안해서 불렀던 스텐카라친이 들어가던 노래, 그리고 '검은 눈동자(Black Eye).'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30여년 전 고향 신문사에서 만나 헤어진 후 서로 행방을 모르고 있었던 선배를 만났다. 인천, 그 선배의 집에서 만나자마자 술을 마셨다. 부친 얘기를 하셨다. 비극적 생을 마친 부친 얘기를 하다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부친이 좋아하는 노래라는 것. 그 게 바로 샬리아핀이 부른 '볼가강 배끄는 인부들의 노래'다. 흔히들 '볼가강의 뱃노래'라고도 하는데, "아이다다 - 아-이다"라는 반복적인 후렴이 인상적이다.

​술 한잔 잘 대접 받았는데, 뭘로 보답할까 궁리타가 생각한 게, 그 독일분으로부터 선물받은 샬리아핀의 씨디이다. 한달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샬리아핀의 씨디를 드렸다. 그 독일분한테는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나보다는 그 선배에게 그 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샬리아핀의 노래는 별도로 나의 아이팟 MP3에 옮겨 담았다.

오늘 아침, 샬리아핀의 노래를 듣는다. 책 내용 속의 샬리아핀, 그리고 그와 관련해 인연을 맺은 분들을 떠올리며 들으니 아늑하면서 좋다. 굵직한 베이스의 저음이 동굴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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