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엘 자주 갑니다. 뭘 사러가기도 하고 그냥 시장구경하러 가기도 합니다. 제기동 약령시장과의 경계가 좀 애매해 첫 발길 때는 헤매기도 했는데, 이제는 잘 찾아 다닙니다. 나름 약령시장과의 경계로 생각하는 건널목이 있습니다. 그 건널목을 지나면 일반 장터인 경동시장입니다. 그 건널목에서 파란 신호등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를 지나는 행인들에게 한 푼 동정을 구하는 장애인입니다. 아랫도리가 불편해 타이어 고무에 앉아 움직이는 분입니다. 하체 뿐 아니라 상반신 쪽도 어디 상당히 안 좋은 데가 있는지 추운 날이건 더운 날이건 항상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울부짓듯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건너 본 건널목이라 거기에는 항상 그 분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인지 거기로 갈 적에는 뭔지 모를 부담이 항상 있습니다. 뭔지 모를 부담이 아니겠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분을 보고 그냥 아무런 일도 아닌양 내 길을 가는 게 부담스러운 것이겠지요. 그런 상황은 되도록이면 안 마주치는 게 좋다고들 합니다. 괜히 죄스럽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피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느 날 그 건널목을 건널 때 였습니다. 그 때는 경동시장에서 장을 본 후 잔뜩 짐을 양손에 든 상태로 제기역으로 가려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으니 아저씨라고 하겠습니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똑같은 포즈에 똑같은 소리와 손짓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빨리 내가 뛰어가 저 아저씨에게 한 푼이나마 돈을 쥐어줘야지 하는.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정말 나는 뛰듯이 걸어 그 아저씨에게 다가 갔습니다. 혼잡한 통행길에 그 아저씨 앞에 멈춰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손에 든 짐꾸러기를 땅바닥에 놓고 지갑에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 그 아저씨에게 줬습니다. 그 아저씨는 그 돈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표정도 없었습니다. 그저 주면 주는대로, 안 주면 안 주는대로 하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물론 나도 고맙다는 소릴 듣기위해 그런 게 아니니 빨리 그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고는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탔습니다.
나로서는 그동안 자주 마주친 관계였지만, 그 아저씨에게 동정을 베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나답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딴에는 그 아저씨와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운 만큼 동정을 베푼다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매일반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왜 그날은 그렇게 했는지, 스스로도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아마 그 즈음에 '착한 일'을 하자고 스스로 마음 먹어야했던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또 경동시장엘 갔습니다. 말린 홍합과 뽕나무잎 사러요. 제기역 2번 출구에서 그 건널목까지 걸어오는 동안 근자에 좀 골치가 아픈 어떤 골똘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건널목의 그 아저씨를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건널목에 이르러 푸른 신호등이 깜빡이는 걸 보고 빨리 건너야겠다는 생각에 뛰듯이 건너려 하는데, 바로 그 순간 그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 이미 나는 뛸 듯하고 있었기에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그렇게 지나쳐 길을 건너고보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저씨를 알고도 모른 채 무시하듯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말린 홍합과 뽕나무잎을 산 후 다시 길을 건너려 그 건널목에 섰습니다. 인파 속에 그 아저씨는 역시 같은 모습과 같은 목소리와 손짓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저씨에게 한 푼의 돈도 건네지 않은 채 그냥 전철역까지 내 길을 걸어 왔습니다.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아저씨를 모른 채 그냥 지나쳤다. 왜 그랬을까. 나 스스로 나에게 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런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경동시장에서 집에 오는 동안 지치고 배가 고팠습니다. 집에 와 씻고 밥을 먹고 그러니 좀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그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착한 일을 행하면서도 그 속내에 도사린 가벼움과 공명심, 이기심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베풀었지만, 그 초심을 잘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선행을 베품을 받은 자 등, 누군가가 알아주리라는 자기 과시와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보상기대 심리를 경계하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불교에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경구가 있습니다. '無住相布施', 즉 '머무름이 없는 베품'이라는 말이지요. 즉, 물질이나 마음에 머무름없이 보시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와 붓다는 행함이 없는 행,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착한 일을 통해 사람들이 진리를 깨우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의 경동시장에서의 이 얘기는 어디에도 당치않는, 아무런 의미없는 촌극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 촌극같은 짤막한 경험이 내 머리 속을 맴도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전철 안에서 구걸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어떨 때 나는 천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고 두리번거리며 줄까말까를 망설여 할 때가 많습니다. 혹여 남이 볼까봐서요. 하지만 실은 보는 사람이, 신경쓰는 사람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퍼 왔습니다.)
'myself'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년 만의 스마트폰 교체 - 갤럭시 S21울트라 (0) | 2021.07.01 |
---|---|
꿈과 죽음, 그리고 걷다 (0) | 2021.06.29 |
AZ백신 '부작용'이 군것질? (0) | 2021.06.03 |
'코로나 백신' 考 (0) | 2021.05.30 |
'步步一體 生獨路' (0) | 2021.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