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壯川 자연습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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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壯川 자연습지 가는 길

by stingo 2021. 6. 12.

오늘 이른 아침, 대장천 자연습지 가는 길. 이 길로 시작한다. 멀리 '마리아수도회 성당'이 보인다. 지난 해 4월부터 내가 '마리안 로드(Marian Road)'로 명명해 놓고 걷던 나의 기도길이다. 저 길을 오가며 많은 기도를 바쳤다. 내 자그마한 신앙의 한 증거 길이기도 하다. 나 말고도 사람들이 이 길을 성당을 보며 묵주기도를 바치며 걸었던 흔적들이 더러 보인다. 언젠가 비 오는 날, 이 길에서 묵주를 주운 적이 있다. 그 묵주를 떨어뜨린 주인이 찾아가길 바라며 길 한편에 놓았었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없었다. 주인이 가져갔던가, 아니면 내가 놓았던 장소를 잘 몰라서 못 찾았던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걸을 때마다 아주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바쳤던 길이다. 오늘 아침 이 길을 걸으며, 나는 지금 어떤 자세이고 어떤 상태인가를 생각했다.

 

대장천이다. 여기서 곧장 걸어가면 자연습지가 나온다. 작년엔 대개 새벽에 이 길을 걸었다. 미명의 새벽을 걷는 이 길이 매일 새롭게 다가와 좋았다. 근일새 비가 온 탓인지 대장천의 수량이 많이 풍부하고 맑아졌다. 낮에 가끔씩 나와보면 팔뚝만한 잉어도 퍼득인다.

 

대장천변에 자리한 장미농원이다. 나는 수년 간 이 장미농원을 봐 왔는데, 한번도 장미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걸 보지 못했다. 항상 시들고 괴째째한 장미들만 보았다. 누가 얘기하기를, 코로나로 꽃 출하를 못해 관리가 부실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일산호수공원에서 매년 열리는 대규모 꽃축제가 이곳 장미농원 장미의 최대수요처였는데, 그게 코로나 열리지 못해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대장천 자연습지 입구의 '진교비(榛橋碑).' 대장동과 능곡의 경계를 이루는 대장천변 다리인 '진교'의 연혁을 알려주는 유적이다. 250여년 전에 조성된 것인데, 개발과 함께 원래 비석은 사라지고 2002년 새로 만들어 세워놓은 것이다. 이 다리 인근에 개암나무가 무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개암나무 榛을 붙여 '榛橋'라 했다는 것이다. 이 비석의 글을 쓴 사람은 정동일 씨라는 분으로, 고양시의 향토학자다. 나와는 오래 전 고양신문에서 몇번 뵌 적이 있다.

대장천 자연습지로 들어가는 초입의 길. 무심코 지나다니던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야트막한 언덕받이 길인데, 오늘 보니 참 아담하고 정감이 간다. 살아오면서 수 없이 많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 길들을 많은 생각과 함께 걸었을 것인데, 마음에 담아놓은 길들이 그리 없는 건 순전히 많은 생각 탓일 것이다. 오늘따라 생각을 비우고 걸으니 길이 마음에 들어온 것일까. 마음을 비우고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걸어보는 길이다. 그 길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습지에서 노닥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장천 자연습지의 규모는 크지 않다. 인근의 장항습지에 비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만한 규모에 맞게 아주 옹기종기하게 가꿔놓아 이곳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됐다. 지난 해, 나는 이 길을 묵주기도를 바쳐가며 걸었다. 이 길에서 만난 분들이 생각난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걷던 노부부가 계셨다. 처음 서로 기도를 바치며 걸을 때 마주치게 되면 뭔가 좀 어색했다. 뭔가 보여서는 안될 일을 들킨 느낌이랄까, 내가 그렇게 느꼈으면 그 분들도 그러셨을 것이다. 그 후 마주치게 되면 가벼운 목례를 건네곤 했다. 지금 쯤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또 한 분, 대중가요을 크게 틀어놓고 아주 열심히 걷는 내 또래의 한 사람이 생각난다. 아주 활달하고 건강해 보였다. 몇 번 마주치다 그 분이 먼저 나에게 목례를 보냈고, 그 후 나도 그러기도 했는데,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아마 아직도 매일 나오실 것인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습지에 혼자 노닥거리는 왜가리 한 마리. 짝 잃은 왜가리인가, 좀 쓸쓸해 보인다.

습지를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길. 저 길도 무수히 걸었다. 저 길을 걸을 때쯤 나는 음악을 들었다. 스마트폰 저장의 음악을 무작위로 듣는 것. 황정자의 '처녀뱃사공'도 나오고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도 나오고 모짤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도 나온다. 라틴어 묵주기도가 나오면 반복해서 듣곤했다. 저 길에서 멀리 보이는 '마리아수도회 성당.' 나로서 대장천 자연습지의 처음과 끝은 저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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