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배수구에서 누런 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던 아내는 땀에 전 채 소파에 앉아있다.
엊저녁 내 베갯닛이 더러워졌다고 궁시렁대던 아내는,
아침준비를 끝내자마자 그 일부터 챙겼다.
한 김이었을까, 소파 방석컵까지 재다 벗겨내고 있었다.
잔뜩 안고 세탁기로 가는 것까지만 봤는데,
그 세탁기 배수구에서 누렇고 이상한 물이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 생각했다.
마침 아내가 다가오길래, 그 걸 가리켰다.
그 게 그리도 놀랄 일이었던가. 아내는 자지러지는 듯 했다.
그리고 미안함과 씁쓸함이 뒤섞인 표정.
베갯닛 대신 베갯속을 세탁기에 넣은 것이다.
베갯 속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 게 씻겨지니 누렇고 이상한 물이 안 나올수 있겠는가.
예전 같으면 한 소리했을 것이다. 이 마누라쟁이라면서…
그러나 나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건망증이면 어떤가.
아기같은 아내의 이런 증상을 나는 보듬어주고 싶다.
'dail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산행, 그리고 서촌 '백석, 흰 당나귀'에서 (0) | 2021.10.10 |
---|---|
꽃과 나비 (0) | 2021.10.08 |
경복궁을 걷다 (2) | 2021.09.11 |
구닥다리 오디오, 그리고 CD의 追憶 (0) | 2021.09.04 |
'이웃사촌'의 情 (0) | 2021.08.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