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의 여인.’
1963년에 나온 노래이니, 이제는 우리 가요의 고전이 됐다.
이 노래에 관해 몇번을 썼고 많이 우려 먹었다.
하지만 아무튼 이 노래는 나의 최애의 흘러간 대중가요인 것이고 지금도 곧잘 흥얼거린다.
그런데 며칠 전에 유뷰브를 통해 이 노래를 듣다가 나로서는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이 노래의 작사 및 작곡에 관한 것인데,
다른 분이 아니라 반야월 선생이 노랫말을 짓고 박시춘 선생이 곡을 붙였다는 것을 봤다.
지금껏 이 노래를 수없이 불렀는데, 작사와 작곡가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것을 안 것이다.
반야월 작사에 박시춘 작곡이라, 그러면 나로서는 이 노래가 더욱 친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분 모두 이미 작고하셨지만, 반야월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생의 따님인 박희라 여사와 함께 충무로에서 자주 뵙던 고향 마산의 선배어른이고,
박시춘 선생은 내 외가 쪽 할아버지뻘되는 분이기 때문이다.
두 분이 살아계실 적인 1980년대 중반 쯤에 충무로 '파주옥'에서 몇 차례 조우한 적이 있다.
두 분은 꼬리곰탕으로 유명한 '파주옥'에서는 '유명인사'였다.
물론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어른이라는 점에서 그렇지만,
그것 외에 두 분이 '파주옥'에서 함께 만나 노시는 재미있고 정감나는 모습으로
그 무렵 충무로에서는 많이들 회자되고 있었다.
두 분이 그 집에서 만나 한잔 술에 취해 취기가 오르면 잘 하시던 오락이 있었다.
서로의 손으로 반주를 하며 장단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불러 제치는 것이었다.
취기에 따라 흥이 솟을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마주 앉은 자세로 손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두 분의 이런 모습은 '파주옥'의 하나의 명물거리였다.
그 때 두 분이 잘 부르던 노래로 남인수의 '무정열차'가 기억이 난다.
'우중의 여인,' 이 노래도 물론 부르곤 했다.
한편으로 이 노래에는 어릴 적 추억이 있다.
예전엔 콩쿨대회, 그러니까 노래자랑이라는 게 자주 열렸다.
내가 자란 마산에서는, 우리 집이 있던 자산동 곁의 무학국민학교에서
콩쿨대회가 자주 열려 신물나게 보러 다녔다.
이 노래가 1963년에 나왔는데, 그 무렵 콩쿨대회의 최신 레퍼토리가 이 노래였다.
마산에서 노래께나 하던 청춘들은 콩쿨대회에서 거의 이 노래를 불렀었기에
이 노래는 내가 어릴 적부터 알고있었다.
그 콩쿨대회에서 일등한 사람들 가운데 나중에 ‘향수에 젖어’라는
노래로 히트를 한 김 철이라는 가수도 있었다.
이 노래는 오리지널이 오기택이다. 가사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노래는 남자 노래다.
그런데, 여자들도 많이 불렀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 때 자산동 우리 집에는 집안 일을 하는 누나가 있었다. 식모라고들 했다.
얼굴이 좀 얼굴이 좀 얽었던 그 누나는 노래를 잘 불렀다.
그 누나가 일을 하며 이 노래를 중얼거리곤 했다.
어머니가 그런 누나를 보며 “니는 시도 때도 없이 와 맨날 그 노래만 부르냐”고
타박아닌 타박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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