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故鄕, 아화(阿火)
본문 바로가기
memory

아버지의 故鄕, 아화(阿火)

by stingo 2021. 12. 22.
"건천은 고향
역에 내리자
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
아버님과 아우님이 잠드는 선산(先山)
거리에는 아는 집보다 모르는 집이 더 많고
간혹 낯익은 얼굴은 너무 늙었다.
우리집 감나무는 몰라보게 컸고
친구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전한다.
눈에 익은 것은 아버님이 거처하시던 방.
아우님이 걸터앉던 마루.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를 가야겠다.
종일 눈길이 그 쪽으로만 가는 산(山)
누구의 얼굴보다 친한 그 산에 구름"
- 박목월, `산'



내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도 아화(阿火)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경산, 영천을 거쳐 경주로 갈라치면, 경주 조금 못미쳐에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행정상으로는 예전에는 경북 월성군 서면 서오리였는데, 지금은 경주시로 편입돼 바뀌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윗 동네와 아랫 동네를 가로 지르고 있는데, 윗 동네 한 가운데 고목나무가 있었다.
지금도 있다. 아화에는 큰 집이 있다. 이 집에서 아버지가 태어나셨을 것이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큰 집을 자주 왔었다.
조금 커 어쩌다 혼자 찾아갈 적에 길을 잃어 조마조마했을 때는 고목나무를 찾았다.
어두운 길 속에서 문득 나타나면 그렇게도 반가울 수 없던 나무다.

뒷쪽으로 높은 산이 있다. 五峰山이다.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봉우리가 다섯개 있는 산이다.
그 산으로 오르는 길에 '쪽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었고, 산 꼭대기에 가면 호랑이 동굴이 있었다.
나의 큰 어머님이 어느 봄인가 나물 뜯으러 올랐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걸음아 나 살려라고 도망치듯 내려왔다. 나물 망태기도 팽개쳐 버리고.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싸릿문 앞에 그 망태기가 놓여져있더라는 얘기가 전한다.
호랑이가 갖다 놓았다는 얘긴데, 믿거나 말거나...
그 큰 어머니 돌아가신적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큰 아버지 가신지도 10년이다.

아버지는 아화에서 기차로 두 정거장 떨어진 모량이라는 곳의 소학교엘 다니셨다.
박목월 시인의 고향도 그 쪽이다. 아화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乾川이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아화로 오려면 지나치는 곳이다. 어릴 적의 기억에는 소(牛)시장이 있었고,
장날이라도 되는 날이면 흰옷입은 할배들이 할매를 뒤에 달고 장죽대를 물고 어슬렁거리던 곳이다.
아버지는 그 인근의 모량소학교 (정확히는 모량심상소학교)를 다니셨다 박 시인도 그 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박 시인의 아들인 박동규 시인이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는 소학교 동문인 셈이다.

오늘 우연히 박목월시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편의 시를 대했다.
아버지가 생각났고, 추억 속 아버지의 고향이 정겹게 다가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