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봉정암의 추억 2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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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정암의 추억 2題

by stingo 2022. 2. 6.





(緣木求魚)
이십여년 전 장마철 어느 여름날의 설악산 봉정암. 절에 무슨 행사가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불공 들이려 온 불자들로 봉정암은 미어 터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네명. 친구 둘과 독일문화원에 계시던 독일인 한 분. 주지로 계시는 스님을 잘 알고있는 관계로 우리들은 운좋게 절 위 요사채 방 한칸에 기거할 수 있었다.
요사채에서 아래로 바라다뵈는 절의 인파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우리들의 숙소는 넓고 쾌적했다.

비는 간간히 내리고 있었고, 우리들은 행장을 풀고 마루에 앉아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일인 벨쓰 씨가 나를 보고 눈짓을 한다. 방으로 들어와 보라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니, 벨쓰 씨가 자기 배낭에서 뭔가를 꺼낸다.
대용량의 위스키 한 병. 맥켈란18년산이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절 오는데 위스키를 가져오다니, 벨쓰 씨는 그런 한국문화를 잘 모르는 듯 했다.
나를 눈짓해 그 위스키를 안긴 것은 내가 술 잘 먹는다는 걸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논의를 했다. 오늘 밤 저 위스키를 마실 것인가. 아니면 내일 서울 나가서 마실 것인가. 결국 몰래 저녁답에 마시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넷이서 그 위스키를 바닥냈다.





마시는 와중에 주지스님이 불시에 우리들에게 왔다. 좀 놀라워 하면서도 그냥 마시라고 했다.
우리들이 취중에 주지스님에게 한 잔을 권했는지는 기억이 아물거린다.

설악산 봉정암에서 위스키를 마신다는 것,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니겠는가. 그날 밤이 이슥해졌을 때 취기가 뻗쳤다.
그런 기분으로 석가사리탑을 어둠 속에서 찾았고, 취기 속에서 꿀잠에 빠져들었다.


(봉정암 석가사리탑)


다음 날, 우중의 하산 길에 우리가 길을 읽고 조난을 당한 것은, 위스키를 마신 업보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들보다 연장자인 벨쓰 씨가 지친 상태에서 저체온증에 빠졌다. 토굴 속에서 응급조치를 한 후 옷을 겹겹이 입혔다.
그렇게 해서 용대리까지 내려오는데 무려 10시간이나 걸렸다.

그 때 함께 한 네 명 가운데, 벨쓰 씨를 포함해 두 명은 이 세상에 없다. 오늘 저녁, 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왜 그 때 생각이 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다만 한잔의 맥켈란이 그리울 뿐이다.






(봉정암 해우소)
예전 설악산 봉정암. 해우소 큰 일 보는 변소는 깊었다.
부자로 보이는 누군가 둘이 들어 와 일을 볼 차비를 하며 말을 주고받는다.

야야, 잘 누라이. 마이 싸고. 나중에 니 혼자 올라카모 무서울끼다 알았제?
아부지야, 알았다.

아들이 바지를 내리는 듯 하는데, 뭔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아들의 화급한 목소리.

아부지, 큰일 났다. 동전을 떨가뿟다.
머시라, 얼매 떨갔노?
오백원짜리 몇 개.
문디, 조심 좀 하지. 우짜마 좋노. 나와 봐라. 내 한번 찾아보꾸마.

아들이 나오고 아버지가 들어가는 소리.
컴컴하고 깊은 똥통에 떨어진 동전이 보일리가 찾아질리가 없다.

아부지야, 찾았나?
안 보인다. 쪼끔 기다리봐라.

일을 끝내고 나와서 보니 아버지는 엎드린 자세로 변소 빗자루로 똥통을
뒤적거리고 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독려하고 있었다.

그 부자가 오백원짜리 동전을 그날 찾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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