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천은 고향
역에 내리자 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 아버님과 아우님이 잠드는 선산(先山) 거리에는 아는 집보다 모르는 집이 더 많고 간혹 낯익은 얼굴은 너무 늙었다. 우리집 감나무는 몰라보게 컸고 친구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전한다. 눈에 익은 것은 아버님이 거처하시던 방. 아우님이 걸터앉던 마루. 내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성묘를 가야겠다. 종일 눈길이 그 쪽으로만 가는 산(山) 누구의 얼굴보다 친한 그 산에 구름" - 박목월, `산' 내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도 아화(阿火)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경산, 영천을 거쳐 경주로 갈라치면, 경주 조금 못미쳐에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행정상으로는 예전에는 경북 월성군 서면 서오리였는데, 지금은 경주시로 편입돼 바뀌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윗 동네와 아랫 동네를 가로 지르고 있는데, 윗 동네 한 가운데 고목나무가 있었다. 지금도 있다. 아화에는 큰 집이 있다. 이 집에서 아버지가 태어나셨을 것이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큰 집을 자주 왔었다. 조금 커 어쩌다 혼자 찾아갈 적에 길을 잃어 조마조마했을 때는 고목나무를 찾았다. 어두운 길 속에서 문득 나타나면 그렇게도 반가울 수 없던 나무다. 뒷쪽으로 높은 산이 있다. 五峰山이다.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봉우리가 다섯개 있는 산이다. 그 산으로 오르는 길에 '쪽샘'이라는 약수터가 있었고, 산 꼭대기에 가면 호랑이 동굴이 있었다. 나의 큰 어머님이 어느 봄인가 나물 뜯으러 올랐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걸음아 나 살려라고 도망치듯 내려왔다. 나물 망태기도 팽개쳐 버리고.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싸릿문 앞에 그 망태기가 놓여져있더라는 얘기가 전한다. 호랑이가 갖다 놓았다는 얘긴데, 믿거나 말거나... 그 큰 어머니 돌아가신적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큰 아버지 가신지도 10년이다. 아버지는 아화에서 기차로 두 정거장 떨어진 모량이라는 곳의 소학교엘 다니셨다. 박목월 시인의 고향도 그 쪽이다. 아화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乾川이라는 곳이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아화로 오려면 지나치는 곳이다. 어릴 적의 기억에는 소(牛)시장이 있었고, 장날이라도 되는 날이면 흰옷입은 할배들이 할매를 뒤에 달고 장죽대를 물고 어슬렁거리던 곳이다. 아버지는 그 인근의 모량소학교 (정확히는 모량심상소학교)를 다니셨다 박 시인도 그 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박 시인의 아들인 박동규 시인이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는 소학교 동문인 셈이다. 오늘 우연히 박목월시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편의 시를 대했다. 아버지가 생각났고, 추억 속 아버지의 고향이 정겹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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