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만나 알게 된 신문기자 출신의 어떤 분이 어제 아침에 이런 글을 적고있다.
"마감이 코앞인 칼럼 첫 줄 얻으려고 뒷산에 올랐더니
첫 줄은 안 떠오르고
낙엽만 우수수 늦가을 양광 속에 떨어지더라."
글은 낭만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의 직업병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청탁받은 글을 쓰려는데, 그 첫 구절을 어떻게 해서든 떠올려 만들고자 하는...
긴 것이든 짧은 것이든 기사를 쓰고자 하면 리드(lead)를 잡는 게 중요하다.
그게 잘 잡혀지면 쓰고자 하는 기사의 반은 이미 쓴 것이나 같다.
그러니 나 또한 젊었을 현직 시절, 마감을 앞두고는 좋은 리드 하나 잡느라고 별 짓을 다했다.
한글 파트에서 주. 월간 영문 파트 일을 맡으면서는 더 그랬다.
별 짓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술이다.
혼자 자작을 하든, 여럿이서 마시든 생각은 오로지 그 하나,
술을 마시면서도 리드를 어떻게 잡느냐에 매몰돼 있다.
그러다 하나 적당한 게 잡혀지면 얼른 메모지에 힌트로 간략하게 남긴다.
그것으로 끝이다. 기사 생각을 털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는 작취미성이라도 상관없다.
메모지에 적혀진 힌트로 기사를 써 나가는 것이다.
한글도 마찬가지지만, 영문기사의 경우 다양한 리드가 있다.
피라밋, 역피라밋 형 등도 있고 의문형으로 나가는 리드도 있다.
젊었을 적에는 작취미성 상태가 오히려 기사가 더 잘 써졌다.
그래서 그게 버릇이 돼 마감 전 날에는 반드시 술을 마셨다.
국장이 마감 펑크 날까봐 나더러 일부러 마감 다음 날 술을 사주겠다는 제의까지
받고 한동안 그런 적도 있다.
마감 전 날이고 작취미성이고 간에 이 모두가 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일이 된다는
나의 일종의 직업병적인 징크스인데, 70줄 이 나이까지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의 꿈을 근자에 자주 꾼다.
리드를 못 잡아, 아니면 기사가 잘 써지지 않아 쩔쩔매는 쫓기는 꿈이다.
어제 밤에는 느닷없이 ‘Nixon resigns’이라는 간단한 문장 하나가 밤새 머리 속을 맴돌았다.
워터게이트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날 미국 어느 메이저신문의 제목이 그것이었다.
기사도 그렇게 시작됐으니, 그게 리드가 된 셈인데,
영문판으로 갔을 때 선배가 리드는 간략해야 한다며 예시로 가르쳐 준 것이었다.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 이젠 별로 쫓길 일도 없는데.
나이 탓이라 치부하기에는 좀 고급스런 꿈 같기도 하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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