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인 大시인은 마리오 청년에게 말한다.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게. 당장 포구해변으로 가라구.
거기서 바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메타포(은유)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無學의 젊은 청년인 마리오가 메타포를 알리가 없다. 대시인의 설명이 뒤따른다.
"메타포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거야. 예컨대 '하늘이 운다'하면 그 게 무슨 뜻이 될까?"
말똥말똥한 눈으로 마리오가 말한다.
"비가 온다는 말 아닌가요." 대시인이 맞장구를 친다. "맞아. 바로 그런 게 메타포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속에 나오는 대목이다.
소설은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탈리아 망명시절,
어느 우편배달부와의 만남을 통한 인연과 그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나면서
시인과 사회운동가로 돼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1994년 만들어진 '일 포스티노(Il Postino; 우편배달부)'이다.
마리오는 네루다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 사물, 그리고 이념에 눈을 뜬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싹터가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그 조그만 귀결이 마리오가 좋아하는 베아트리체와의 사랑과 결혼이고,
더 큰 것은 그가 마침내 시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든 시인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솔직한 느낌과 표현이 그 전제다.
꼭 무슨 특별한 재능이라든가 논리와 교육적인 배경 등을 가져야만 시인이 되고
시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네루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네루다는 생전에 그가 아이였을 때나 성인이 되었을 때나, 공부나 도서관이나 작가들보다는
강과 새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의 탁상공론적인 이론을 싫어했다.
"가끔 시에 대한 논문을 읽기 시작한 적이 있었지만,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지나치게 유식한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흐리게 하거나, 빵을 석탄으로 바꾸거나,
말(言)을 나사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가련한 시인을 형제들과 지상의 벗들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온갖 그럴듯한 거짓을 말합니다."
네루다가 1957년 자신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폴튜걸語 번역판 서문에 쓴 글이다.
그러면서 네루다는 시를 신비화하고 신화로 만들어가는 이론을 배격하면서
"나는 이론을 씹기를 거부한다(I refuse to chew theories)"고 서문 말미에 적고 있다.
그의 문학적 소재는 순수한 인간과 사랑, 그리고 자연이었고,
그를 바탕으로 시인의 영원한 의무는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착취당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런 지론은 그가 칠레의 대표적인 민중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로서 보낸 그의 일생과 맞닿아 있다.
글쓰기에 있어 형식과 격식을 싫어한 메타포의 시인 네루다의 생애는,
그러나 간단치가 않다. 깊은 바다 속을 질주하는 참치를 어디에서 날아올지 모를 ‘심해 속의 탄환’으로
은유한 네루다는 그의 조국 칠레의 현대사처럼 질곡의 삶을 살았다.
네루다는 칠레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 인민연합의 아옌데와 후보 단일화를 통해
'칠레의 봄'을 가져오는데 앞장선다. 그러나 1973년 9월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는 그를 절망케 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지 불과 2년 뒤의 일이다. 군사쿠데타로 칠레의 민주화는 물거품이 됐고,
네루다 역시 깊은 절망감 속에서 그해 죽음을 맞는다. 군사쿠데타 후 십 여 일 만이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암(전립선)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칠레 군사정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사인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피노체트 군부에 의한 피살 여부가 그 핵심 의혹이다.
네루다 말년의 개인운전기사의 증언은 보다 더 구체적인 것이다.
"네루다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정부요원이 찾아와 위에 독극물을 투입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진상조사를 촉구해왔다. 칠레 정부가 결국 이를 수용하고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 첫 번째 고리는 그의 유해에 대해 독살여부를 밝히는 정밀 조사로, 그 해 4월 중순 이뤄졌다.
그가 죽은 지 40년만이다. 그러나 타살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잠정 발표됐다.
독살의 증거를 찾기위해 산티아고 법의학연구소에 3년이나 보관됐던 네루다의 유해는 2016년
그가 생전에 묻혀지기를 원했던,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칠레의 태평양 연안 해변마을인
고향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에 안장됐다.
이론을 씹기를 거부함* (I Refuse to Chew Therories by Pablo Neruda)
내 편집자이자 친구인 <에니오 실베이라>는 브라질의 세 명의 시인들이 번역해 준 내 시집에 몇 마디의 소개의 말을 넣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금 나는 긴 식탁에서 건배를 올려야 하는 사람처럼, 무엇을 말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쉰세 살이지만, 시가 무엇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정의할지도 모릅니다. 이 어둡지만 매혹적인 주제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조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였을 때나 성인이 되었을 때나, 도서관이나 작가들보다는 강과 새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습니다.
시인의 영원한 의무가 인민, 가난한 이들, 그리고 착취당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가? 글을 쓰는 사람, 시를 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집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이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는 사랑은, 그 강렬한 카드를 탁자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끔 시에 대한 논문을 읽기 시작한 적이 있었지만, 끝까지 읽은 적이 없습니다. 지나치게 유식한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흐리게 하거나, 빵을 석탄으로 바꾸거나, 말(言)을 나사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가련한 시인을 형제들과 지상의 벗들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온갖 그럴듯한 거짓을 말합니다. “당신은 마술사야“ 라고. ”당신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이야“ 라고. 어떨 때는 시인들도 이런 말을 믿고 왕국을 선사받은 듯 이런 일들을 반복하지요. 진실은, 이 아첨꾼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노래가 전파되는, 시인들의 왕국이 겁나서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시를 이렇게 신비화하고 신화로 만들기 때문에, 내가 읽지도 않고 (사실은 혐오하는) 온갖 논문들이 범람하는 것이지요. 음식을 씹어서 다른 사람들이 삼킬 수 있게 만드는 에스키모의 관습을 그들은 기억해 냅니다. 글쎄요, 나는 이론을 씹기를 거부합니다. 그 대신, 내가 대지와 사랑에 빠진 칠레 남부의 적참나무숲이나, 스타킹 공장이나, 망간 광산(그곳 사람들은 나를 잘 알지요), 혹은 튀긴 생선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걷고자 합니다.
자연적인 사람과 인위적인 사람들로, 또는 현실주의자와 몽상가로,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인간인 사람과 인간이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이 아닌 사람들은 시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적어도 나의 시와는.
내가 몇 마디를 말하도록 요청받은 이 긴 브라질 탁자의 끝에 서서, 내가 말은 많이 했어도 정작 중요한 것은 말하지 못했음을 압니다. 서문이나 헌정을 쓰는 것을 항상 주저하지만 이번에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시적이며 흙냄새 나는 강렬한 나라 브라질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칠레인들이 말하듯) 일 년 13개월 동안 도시와 산과 길에 내려, 태평양 군도를 적시고 고독한 파타고니아를 지나 남극에서 얼어붙는 차디찬 비 아래에서 나는 자랐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 빛나는 나라, 미대륙 지도에서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는 영원한 푸른 나비와 같은 나라가 나를 매혹하였고 설레게 하였으며, 그 신비한 매력의 근원을 찾아나서게 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땅의 상냥하고 우애 넘치는 강한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내 가슴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나라와 그 사람들에게 이 시들을 사랑으로 바칩니다.
(*1957년에 출간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포르투갈어 번역본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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