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질이 도진 것인가. 좀 잊고 살았던 그 어떤 것이 스멀거리며 눈에 아롱거린다. 이 나이쯤엔 될 수 있으면 호기심을 버려야 한다. 나이도 잊고 그에 파묻히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우려를 우려다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 때가 있으니, 그게 바로 고질이 아닌가 싶다.
이베이(eBay) 서핑을 하다가 어떤 물건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동석으로 만들어진, 상형문자가 새겨진 고대 이집트 풍뎅이(scarab) 상(像)이다. 기원전(B.C)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풍뎅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와 태양의 영원한 부활의 상징으로 받들어지던 곤충이다.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니 진품이다. 가격은 보는 그 시각쯤에는 십여 달러에 불과했다. 그걸 갖고 싶었다. 밤을 새우다시피하다 결국은 놓쳤다. 깜빡하는 순간 누가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이제는 뒤떨어지는 나의 순발력을 탓할 수밖에. 훤하게 밝아오는 새벽 여명속의 무력감.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자탄(自嘆)의 염(念).
한때 고대 이집트에 관계되는 '이집트학(學)(Egyptology)'에 좀 빠져본 적이 있다. 30년도 더 됐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유한적인 인간 생명과 영혼에 대한 나름의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는 영혼과 육체의 불멸에 관한 한 전성의 시기였고, 그래서 이집트를 좀 파고 싶었던 것이다.
자료가 귀하던 시절이다. 겨우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등을 통해 그나마 갈증을 해소했을 정도다. 이 무렵 어떤 계기가 고대 이집트에 관한 나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책에 관한 얘기다. 어느 날, 을지로 지하의, 타자기 등을 취급하는 사무용품 상가를 지나고 있었다. 어느 곳에선가 헌책방 한 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책방이었는데, 주로 외국원서를 팔고 있었다. 입구 쪽에서 서성거리며 바깥에 내놓은 책들을 보고 있는데, 어떤 책이 눈에 들어왔다. '더 서치 포 옴 세티(The Search for Omm Sety)' '옴 세티를 찾아서'라는, 영어로 쓰여 진 책이었다. 그 책은 한권이 있는 게 아니라 수십 권이 한 다발로 묶여 있었다. 대충 읽어 보다 “어라” 싶었다.
책은 고대 이집트에 관한 것이었는데, 도로시 이디(Dorothy Eady, 1904-1981)라는, 1900년대 초 한 영국여자의 빙의에 관한 책이다. 이집트의 파라오 세티(Sety) 1세가 사랑했던, 무녀(巫女) 옴 세티(Omm Sety)(Omm은 이집트어로 여자를 나타낸다)의 영혼이 도로시 이디 속으로 들어가 앉은 것이다. 하여 도로시는 일생을 옴 세티로 살다가 1980년대 초인가 죽었는데, 그녀는 빙의에 의한 옴 세티의 덕분으로 고대 이집트에 관한 고고사적 연구와 유물발굴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이는 고대 이집트 연구학회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참고로 세티 1세 파라오는 영화 '십계'에서 이집트 파라오로 나오는 람세스의 아들이다.
책은 조나단 코트(Jonathan Cott)가 도로시의 구술을 글로 옮긴 것이다. 3장으로 되어있는데, 첫 장은 평범하게 태어나 6살 경 옴 세티의 영혼으로 빙의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고, 둘째 장은 옴 세티로서의 경험, 이를테면 세티 파라오와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이집트에서의 생활, 그리고 이집트 유적 발굴 등을 다뤘다. 셋째 장 은 시공을 거슬러 옴 세티로서 세티 파라오를 만나면서 사랑을 나누는 고대 이집트에서의 생활과 사랑 등을 그리고 있다.
목 마른자 우물을 만난 격으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출. 퇴근 때도 갖고 다니며 읽었다. 책에 나오는 고대 이집트에 관한 여러 얘기들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옴 세티가 나를 떠나 버렸다. 책을 읽어 버린 것이다. 술 먹고 집엘 가다가 택시에 두고 내렸는데, 셋째 장을 거의 다 읽고 끄트머리만 남겨둔 상태였는데, 그 안타까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몇 날을 찾고자 노력했으나 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을지로 지하상가, 그 헌책방이 생각났다. 그 책이 여러 권 있지 않았던가. 을지로 지하상가로 갔다. 그러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 책방이 없어진 것이다. 며칠 만에 없어질 수가 있나 싶어 몇 차례나 그 주변을 기웃거렸으나, 그 책방은 없었다. 부근 잡화점에 들어가 물어 보았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런 책방은 애시 당초 없었다는 것. 이 무슨 괴변인가 싶어 무엇엔가 홀린 기분이 들었다. 과연 그런 책이 있었던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 후 한 동안 도로시 이디와 옴 세티 생각 속에 갇혀있다시피 했다. 그 책을 구하기로 백방으로 수소문도 해보았다. 서울대병원에 있던 친구가 그 무렵 학회 일로 미국을 간다고 해서 부탁도 해 봤으나, 미국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옴 세티와 도로시 이디도 나의 생각 속에서 점차 떠나갔다. 그러다 그 여자들이 다시 나타났다. 인터넷 덕분이다. 1998년인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아마존(amazon.com)에서 드디어 그 책을 찾은 것이다. 그 때의 반가움은 감격 수준이었다. 당장 주문을 했고, 한 십 여일 걸려 그 책을 받았다. 그 책은 지금도 집에 '모셔져' 있다.
풍뎅이를 떠나보낸 이 아침에 그 책을 다시 펼쳐본다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뭔가 스멀거리며 다가오는 느낌. 나는 다시 고대 이집트로 가려함인가. 이 고질적인 호기심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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