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 교수의 <술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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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최명 교수의 <술의 반란>

by stingo 2022. 2. 28.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보고있다.
서울대 최명 명예교수의 <술의 반란>이라는 책이다.
술에 관한 책인데, ‘반란’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좀 복잡하게 보이는데,
요컨대 저자의 단주 내지 금주에 얽힌 얘기를 담고있는 책이다.
이 책이 나로서는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 책이 나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책은 물론 최 교수의 단주 내지 금주와 관련한 이런저런 소회를 적은 글이지만,
글의 행간에 담겨지고 있는 의미는 술 마시는 것을 칼로 물 베듯 하는 것으로 보여지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형국의 모습으로 느껴지는데,
그게 어쩌면 그리도 내 처지와 맞아 떨어지느냐는 것이다.

얼마 보지는 않았지만, 최 교수는 일단 자신의 금주 내지 단주 의지를 서두에서 ‘명백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좀 얼버부리는 측면이 있다.
자신의 금주 내지 단주와 관련한 이유 가운데 저자의 의중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언급은 이런 것이다.

“이제 그만 술을 마셔도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오늘부터 마시지 말자.”

최 교수는 이 말로 자신이 술을 끊었음을 주변에 선포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책의 글 곳곳에 이 백 등 중국 시인들의 술을 예찬하는 글을 인용하고있는 게 나로서는 여간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끊기는 끊었으되, 2014년에 자신이 출간한 책 제목 그대로 술을 예찬하고 있는 <술의 노래>에서처럼,
술에 깃든 자유로운 정신이나 정취에는 여전히 천착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최 교수와 가까운 사이인 김동길 박사가 최 교수의 금주 내지 단주와 관련해 최 교수에게 보낸 李白의 시를 인용한 글귀도 아리송하면서 재미있다.

“抽刀斷水水更流”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흐른다)

이백의 이 시 구절은 말하자면 이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물은 칼로 베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니까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흐르니 다 부질없고 소용없는 일이니,
술을 끊었다는 것이 한 마디로 ‘칼로 물베기’이니 그게 얼마까지 가겠는가고 반문하는 투의 글로 최 교수는 일견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뒤에 나오는 글귀는 앞 귀와 다소 대조적이다.

“擧杯銷愁愁更愁”
(잔을 들어 근심을 없애려해도 근심은 다시 생기게 마련이다)

이 글귀는 근심을 없애려 술을 마시는 게 별 소용없는 짓이라는 의미에서
술을 끊으라는 쪽의 의미에 다소 부합된다.
김동길 박사는 이 싯귀들을 최 교수에게 보내면서 당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최 교수는 김동길 박사가 이 글귀와 함께 보낸 다른 글귀를 길게 인용하면서 자신의 단주 내기 금주가 ‘칼로 물베기’가 아닐 것이라는 식으로
김 박사의 뜻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한데,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는 나도 헷갈린다.

아무튼 <술의 반란> 이 책은 최 교수의 금주 내지 단주에 관한 일종의 자기 고백서라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로서는 동병상련의 어떤 공감을 안기는 책이다.
특히 ‘칼로 물베기’의 ‘추도단수’라는 이 표현을 하나 알게된 게 나로서는 수확이다.
술을 끊는 것과 관련해 여직껏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설득력있는 표현이기 때문이기도 할 뿐더러 어쩌면 나름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써먹을 여지도 다분한 말이기에 그렇다.





이 책에는 최 교수가 교분을 나누고 있는 몇몇 지인들의 면면도 소개되고 있는데,
김동길 박사가 그렇고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도 그렇다. 특히 김형국 교수를 이 책에서 대하니 반갑다.
나의 고등학교 10년 선배이기도 할 뿐더러, 지난 2016년 나의 졸저인 <그곳에 마산이 있었다>의 후기를 쓰신 분이기도 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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