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홍씨에게
'혜빈(惠嬪)'이라는 시호가 있는 줄 오늘 '혜빈궁일기'라는 책을 대하고 처음 알았다.
규장각에 이 일기가 여태까지 보존돼 온 걸 250 여년 만에 처음으로 풀이해 내 놓은 책이다.
혜빈이라는 시호는 1762년 윤 5월 21일 사도세자의 죽음을 공식으로 확인한 날,
영조가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정함과 아울러 며느리인 홍 씨에게 내려진 것인데,
'시법(諡法)'에 '寬裕慈仁曰惠(관유자인왈혜)'라고 적혀있듯,
영조는 며느리 洪 씨를 '너그럽고 인자하다'고 본 것이다.
아들을 죽여놓고 그 며느리에게 태연히 이런 시호를 내린 영조의 속 마음이 어떠했을까 궁금스럽다.
한편으로 사도세자의 '思悼'와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슬퍼할 '悼'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영조가 세자였던 자식의 죽음을 슬퍼해 내린 시호로 알고들 있지만, 그게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시법'에 '사도'로 시호를 내린 이유가 있다.
즉 '追悔前過曰思(추회전과왈사) 年中早夭曰悼(연중조요왈도)'라고 했다.
풀이하자면 "이전의 잘못을 후회하는 것을 '사'라 하고, 이른 나이에 죽은 것을 '도'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끝까지 슬퍼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이 그 때까지도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혜빈궁일기'는 지아비인 사도세자가 죽은 후 홀로 남은 혜빈 홍 씨가 거처했던 처소인
혜빈궁의 일지와 같은 기록물로, 1764년과 1765년 두 해 분을 담고 있다.
이는 궁궐의 공식 일기지만 여성 처소의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돋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 일기는 주로 문안인사와 제사 등 궁중 의식, 의식과 관련된 기본 생활정보,
그리고 내관, 궁인, 궁비 등 궁궐 근무 직원들에 대한 관리 등을 담고 있어
궁중의 여성사와 풍속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 일기는 궁궐의 사무나 행정적인 일기라는 점에서
문학성이 돋보이는 홍 씨의 '한중록'과는 차원이 다른 기록물이다.
홍 씨는 생전 처소인 혜빈궁으로 창경궁의 경춘전과 경희궁의 양덕궁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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