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쉬엄쉬엄 보다가, 이번 추석연휴를 보내는데 안성맞춤이려니 하고 여겼는데,
생각대로 잘 안 된다. 무엇보다 책이 이제는 잘 읽혀지지가 않는 것이다. 몸이 우선 그렇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자세 문제다. 어떤 자세로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인데,
어떤 자세로도 불편하다. 앉아서 보기도 그렇고, 누워서도 그렇고 엎드려서도 그렇고,
아무튼 어떤 자세이던 얼마 못 가 몸의 뒤틀리고 편안하지가 않다. 게다가 눈은 또 어떤가.
돋보기가 서너개 되는데, 그 어떤 것이든 이제는 맞지가 않고 침침하다.
어제는 궁리 끝에 세라젬 침대에 누워 보려했는데, 잠만 잤다.
책에 대한 욕구가 이리 당긴 적도 없지만, 그걸 충족시킬 수 없는 게 몸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는 것도 처음이다.
'행복한 책읽기'라는 생각은 이제는 나의 일상에서 지워야할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읽어나가기는 한다.
지금 다시 '장미의 이름'을 보는 건 나로서는 일종의 기억 혹은 추억 찾기다.
책 내용이야 그렇고 그런 것이고, 나로서는 예전에 읽었던 어떤 부분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다시금 그 내용을 시방의 내 생각에 견줘보는 것이다.
그러니 책의 줄거리보다는 이 책에 담겨진 움베르토 에코의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한
가톨릭과 관련한 이런 저런 논란과 의혹을 내가 갖고있는 생각에 맞춰보는 게 재미있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으로 '장미의 이름,' 이 책을 다시 보면 이 책이 중세 가톨릭의 여러 성인과 수도사들의
열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가톨릭 근본주의(엄격주의)를 둘러싼
프란치스코 회와 베네딕도 회, 그리고 교황과의 대립과 갈등에서 그런 측면이 부각된다.
아무튼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철학과 종교, 그리고 기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자인 이윤기(1947-2010) 선생에 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윤기 선생을 지금껏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해 온 점이 있다.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딱히 잡혀지는 것은 구체적이지 않고 아무튼 그랬다.
이윤기 선생에 대한 내 평가가 달라진 것은 얼마 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선생 번역본으로 읽은 그 이후다. 지금껏 생각해왔던 선생의 번역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원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번역에 대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느낌에 의한 읽는 재미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선생의 조르바가 그랬던 것인데, 그에는 선생 특유의 문학적인 감각과 표현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 이 책의 한국어 초판 번역도 이윤기 선생이 맡았다.
그게 1980년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그 초판을 나는 누구보다 먼저 사보았다.
그러나 읽다가 책을 던져버렸다. 번역이 조잡했던 것이고,
그게 이윤기 선생을 평가하는 나의 하나의 척도가 됐다.
그 후 얼마 간의 세월이 흐른 1990년대 초반이었던가, 이윤기 선생이 다시 이 책 번역본을 냈다.
선생이 초판 번역의 오류를 인정한 후 공부하러 미국에 있다 돌아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그 때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다만 나는 초판본 사본 게 아까워 출판사에 초판 환불을 요구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었다.
창작이든, 번역이든 자신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가 아주 드문 우리 문학계풍토에
선생은 한 휙을 그은 분이다.
'장미의 이름'을 다시 보기로 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도 있지만,
하나 더 보탠다면 이윤기 선생에 대한 그런 추억이 있기 때문이고,
조르바 번역의 글에 이끌리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나그네의 휴식, 모든 수고의 끝
(mors est quies viatoris, finis est omnis labo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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