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시방처럼 무더운 여름날을 책과 함께 보낸 적이 있다. 그 중 생각나는 게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의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이다.
1983년인가, 그 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그 때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이 책을 구입해 일주일 휴가기간 내내 집안에서 뒹굴며 읽었다. 그때 교보문고에 페이퍼백의 이 책이 있었다. 한 7-8백 페이지 쯤 됐을 것이다. 이 책에 꼽힌 건, 그 해 초에 본 이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때문이었다. 메릴 스트립이 소피로 나온 이 영화에 푹 빠져 두 세번을 보다 결국 원작까지 읽게 된 것이다. 두꺼운 문고판 페이퍼백 책을 읽기 쉽게 찢어 분할해 읽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본 책인대, 읽고 난 후 어떻게 됐는지 없어졌다. 그게 아쉬워서 그랬을 것이다. 1998년인가, 이 책을 다시 구했다. 아마존에서 처음 구입한 게 이 책이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 책을 아마존에 주문한 후 도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20여 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아마존에 어필을 했다. 답이 오기를 언제까지 기다려보고 그 때까지도 도착이 되질 않으면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
그 시한까지도 도착하실 않아 다시 아마존에 어필을 했다. 그랬더니, 아마존에서 미안하다며 다시 책을 부쳐주겠다고 했고 다시 책을 보냈다. 그 얼마 후 책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 책은 처음 주문했던 책이었다. 그리고 그 얼마 후에 다시 책을 받았다. 아마존에서 다시 보낸 책이다. 아마존에 그 얘길하고 책을 반송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마존에서 이런 연락이 왔다. “책, 반송시킬 필요가 없다.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게 선물하시라.” 감동이었다.
아마존을 지금껏 신뢰하고 있는 건 그런 이유도 있다. 아마존 말대로 그 때 나는 여분의 책을 친구에게 선물했다. 이 책은 <The Modern Library of the World’s Best Books>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 때문이었을까. 오늘 문득 그 책이 생각 나 서재를 뒤졌더니 찾아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책 알맹이는 없고 표지만 나왔다. 알맹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럴리가 없을 것이라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르겠다. 책을 보다 표지가 걸리적거려 그랬을 수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책장을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또 한 권의 ‘Sophie’s Choice’를 발견했다. 처음 보듯 생소한 책이다. 이걸 내가 언제 구입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책은 ‘Random House’에서 3쇄로 1979년에 펴낸 하드커버의 책이다. 기억을 찾으려 책을 펼쳤더니 표시해 높은 부분이 몇 군데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튼 읽기는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
이 부분에 표시가 돼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 확신이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Sophie와 Nathan이 평소 즐겨듣던, 그리고 특히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들었던 음악의 목록이다.
‘…Purcell’s Trumpet Voluntary, the Haydn cello concerto, part of the Pastoral Symphony, the lament for Eurydice from Gluck’s Orfeo… the larghetto from the B-flat major piano concerto or Mozart…’
‘Sophie’s Choice,’ 이 책을 다시 볼 생각은 별로 없다. 3, 4십년 전 그 때 느꼈던 이 책에 대한 감흥이 다시 살아나지도 않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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