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을 보고 품평의 글을 쓰는 ‘맛 칼럼니스트’들이 많다. 근년간에 생겨난 새로운 직업군이다.
이 일이 웰빙시대에 맞춰 각광을 받다보니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고,
그러다보니 더러는 얕은 지식에 과장된 언행으로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꼴사납다고나 할까. 아무튼 '맛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며 설쳐대는 인물들 가운데 회자되는 사람이 있다. 대표적인 문빠활동가인 황 머시기다. 이 양반은 그 나름으로 자신이 맛 칼럼니스트의 원조라는 격으로
은근히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다보니 과장과 일탈이 나온다.
맛과 음식에 관해 희한하고 얼토당토한 이론을 들고나와 실소케 하는 일을 잘 벌이곤 한다.
황 씨 이 양반이 '맛 칼럼니스트'의 선구자임을 자처하지만,
기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따로 있다. '비극은 없다'의 소설가 백파 홍성유(1928-2002) 선생이다.
백파 선생은 1980년대부터 전국의 맛집을 다니며 맛을 평가하는 글을 써 이 분야를 개척한 분이다.
백파 선생의 '맛 칼럼'은 쓰는 글에서 우선 품격이 황 씨와 달랐다.
황 씨의 맛에 대한 글은 수준도 그렇거니와 글이 구질구질하다.
그 이유는 그의 독특한 강성문빠 활동에 기인한다.
맛에 대한 얘기면 맛을 쓰면 되는데, 이 양반은 쓸데없는 군더기 말을 덧붙인다.
말하자면 ‘맛 글’에 격에 맞지않은 정치적인 주절거림을 가미하기 때문이다.
백파 선생의 ‘맛 글’은 간결하고 담백하다. 소설가답게 글맛을 아는 것이다.
우선 길게 쓰질 않는다.
맛을 알리고 그를 평가하는 것 외에 다른 말이나 수사는 최대한 절제해 쓰고 있다.
선생이 쓴 1980, 90년대 전국의 맛집을 탐방하며 쓴 '맛 글'이 <한국 맛있는 집>이라는 책으로 나온 게
1987년이다. 이 책은 시리즈로 나와 공전의 히트를 쳤다. 1987년 1권이 나온 후 1990년대 말까지 나왔다.시리즈 1권이 <한국 맛있는 집 666店>인데, 이 책에는 각 지역별로 맛 있는 집 666곳을 소개하고 있다.
어제 서재 한 켠에 있길래 옛 생각에 한번 펼쳐보았다. 낯 익고 기억에 있는 추억의 맛집들이 나온다.
인사동 ‘사동집,’ 명동 ‘한일관,’ 종로 ‘이문설렁탕’ 등등. 이들 맛집들은 아직도 있다.
‘이문설렁탕’은 자리를 옮겼을 뿐 아직도 ‘100년 설렁탕’의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내가 산 게 아니고, 김각(1935-2011) 선생이 주신 책이다.
코리아헤럴드 논설실에 계셨던 선생은 가히 맛과 술의 대가였다.
일주일에 두어번은 나를 맛집에 데려 갔는데, 갈 적마다 항상 신문 쪽지를 갖고있었다.
맛집의 출처인 신문기사 쪼가리였다.
그러던 1987년의 여름 어느 날, 선생이 이 책을 불쑥 나에게 내밀었다.
“김 군, 앞으로 신문쪼가리 볼 필요없다. 이 책에 나와있는 집으로 가면 되니까...”
그러며 나더러 책을 가지라 했다.
그 때 이후로 내가 이 책에서 맛집을 찾아 선생께 여쭌 후 그 집으로 가곤했다.
이 책을 처음 보고 찾아간 집이 부천에 있는 ‘우래정’이라는 도가니탕 전문집이었다.
기세좋게(?)신문사 차를 타고 간 그 집에서 많이 마시고 대취해 집으로 오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백파와 김각 선생, 두 분 다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이 책 후기에 백파선생이 책 발간에 도움을 줘 고마움을 표한 '와사등'의 김광균(1914-1993) 선생도 오래 전에 작고하셨다.
음식과 맛은 사람에 대한 추억이라는 것을 이 책을 오랜만에 대하면서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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