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 15일은 자유당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분연히 떨쳐나섰던,
마산의 '3.15의거'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마산이 고향인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어났고,
어린 마음에도 분통이 터져 시위대와 함께 마산거리를 누벼봤기 때문에 저는 그 때의 기억이 아조 뚜렷합니다.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계기가 된 중대한 사변이었던 만큼
'3.15의거'는 마산 뿐 아니라 전 국민 모두가 기려야 할 기념일입니다.
아울러 저는 마산사람으로서 '3.15의거'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3.15의거'는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측면에서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저의 어렸을 적의 추억의 한 토막이기도 합니다.
마산의 '3.15의거', 이 격랑의 사건을 나는 어릴 때 겪었다.
자유당 이승만정권의 선거 부정을 규탄하기 위해 떨쳐나선 사람들이 관에 의해
죽고 다친 무서운 사건이라, 이를 '추억'으로 생각하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그때 내 나이 고작 9살,
철 들기 전이라 그때를 돌이켜 추억이라 해도 그리 욕 먹을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한 소녀가 생각난다.
그 당시 좀 살만한 집에는 '식모'를 뒀다. 지금으로 치면 가정부다. 우리 집에도 있었다.
나보다 서너 살 더 먹은, 경북 금릉에서 소개를 통해 온 소녀였다.
우리 집에 처음 왔던 날이 기억난다.
옥희라는 이름의 그 소녀가 우리 집으로 왔는데, 첫 인상은 핼쓱한 얼굴이었다.
오랜 시간을 흔들거리는 먼 거리 버스를 타고오느라 멀미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훌쩍거리며 많이 울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먼 객지의 생면부지의 낯선 집에 왔으니 얼마나 서럽고 두려웠겠는가.
어머니는 나더러 그 소녀를 누부야(누나)라 부르라고 했고 나는 그 누나를 많이 따랐다.
3.15가 터진 후 마산 시내는 공포의 도시가 됐다.
우리 집 바로 앞 개울에 경찰이 기관총을 설치해 몇 날을 밤이면 쏴댔다.
우리들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고,
밤이면 전기가 끊어진 방에서 부모님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라디오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답에 옥희 누나가 말 없이 집을 나갔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로 죽여진 채 수장당한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바다에 떠오른 그날일 것이다.
2만 여명의 시민들이 가두 시위를 벌여 많은 사상자가 난 날이다.
그 날 밤 누나는 집에도 들어오질 않았다. 찾아볼 수도 없었다. 걱정 속에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다음 날 배달된 동아일보에 그 전날 대규모 시위 소식이 큰 사진과 함께 일면 톱 기사로 실렸다.
우리 집에서 멀지않은 남성동 파출소가 시민들의 투석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파출소 앞은 하얀 종이로 뒤덮었다. 파출소 서류들이다.
난장판이 된 그 파출소 앞에서 많은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신다.
"어, 야 옥희 아이가?" 그러시면서 신문 사진을 어머니에게 보여 주셨다.
어머니도 그 사진을 보시고는"맞네예, 옥희 맞네예" 하셨다.
파출소 앞 시위대 맨 앞 줄에 옥희 누나가 플래카드를 함께 들고 비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밤 늦게 옥희 누나는 집으로 왔다.
안위를 걱정하던 부모님은 반가운 마음과 함께 질책을 했지만, 누나는 별 말이 없었다.
누나가 그 후 얼마를 더 우리 집에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어느 날 학교엘 갔다 오니 누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물었더니, 그냥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다고만 하셨다.
그 얼마 후 우리는 남성동을 떠나 자산동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매년 3.15의거 날이 오면 그 누나가 생각난다.
누나는 왜 그날 저녁 시위대에 나갔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나는 동아일보에 난 옥희 누나 사진을 찾아보려 애를 써기도 했다.
몇 년전인가는 동아일보까지 찾아가 그 때 사진을 찾아봤으나,
어떻게 된 노릇인지 찾아지지가 않았다.
분명 동아일보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아마도 그 신문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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