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주 인근이 본적지여서 어릴 적 아버지랑 많이 다녔으면서도 경주를 잘 모른다.
나름 알려고 노력을 꽤 했지만, 제대로 하질 못했고, 그게 지금도 아쉽다.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이즈음 경주를 여행 중이면서 경주에 관한 글을 올리고있는 것을 잘 보고있다.
그러다 책장에서 눈에 띈게 바로 이 책 <역사의 땅 경주, 아름다운 전설과 함께하다>이다.
책을 펼쳐보니 이 책과 관련한 옛추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이 책은 최영주(1944-1997)라는 분이 쓰셨는데, 오늘 이 책을 보고 이 분이 1997년에 타계하신 것을 비로소 알았다.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얽힌 추억과 관련해서는 내가 이 분을 생전에 한번 만나 뵌 적이 있다는 것이다.
1991년인가, 신문사를 옮긴 후 경주 남산 취재를 위해 경주엘 갔다가 동행한 서동훈 논설위원의 소개를 만났는데,
경주 인근 쪽샘이 고향인 서 의원과는 친한 친구사이였다.
남산기슭에 계시던,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리던 윤경렬(1916-1999) 선생을 뵌 후 경주시내에서 최 선생을 만났다.
체구가 장대하고 호방한 분이었다. 윤 선생이 ‘마지막 신라인’이었다면, 최 선생은 ‘영원한 신라인’임을 자임하고 있었다.
경주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지 옆마을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감은사 탑을 보며 컸고,
첨성대 바로 곁마을에서 성년기를 보낸 분인 만큼 신라와 경주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해박했다.
질펀하게 술을 함께 나누면서도 최 선생의 모든 얘기는 경주와 신라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최 선생은 우리 일행더러 자기 집엘 가자고 했다. 보여줄 게 있다는 것이다.
최 선생 집엘 가서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속절없이 빨려들었다. 감은사 터와 삼층석탑을 찍은 거대한 흑백사진이었다.
사진을 찍은 시기는 최 선생 어릴 때였고, 그는 그 사진 찍는 현장에서 그 걸 지켜봤다고 한다.
두루말이 형태로 한쪽 벽면에 꽉차게 자리한 그 사진은 내가 그때까지 본 감은사 사진 가운데 최고의 것이었다.
얼큰한 상태였던지라 그 감동은 더했다. 그 사진을 두고 펼쳐지는 최 선생의 감은사에 관한 얘기는 끝이 없는듯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나는 그 사진이 갖고 싶었다. 그러나 내 속셈을 어찌 꺼낼 수 있겠는가.
최 선생의 어린 아들이 내가 그때 카메라와 함께 취재용으로 갖고 다니던 소형 적외선망원경을 신기해하며 탐내길래
선뜻 줘버린 것도 나의 그 속셈의 일환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자그마한 인연이 있었던 최 선생과는 그 후 뵐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늘 이 책을 보면서 30여년 만에 최 선생을 떠올리는 것이다.
2005년에 나온 이 책이 어떻게 내 수중에 있게 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서문을 최 선생의 막역한 친구인 서동훈 위원이 쓰고있는 데서 어떤 힌트가 잡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서 위원 본지도 연락해본지도 한참 된다.
그건 그렇고 그날 최 선생 집에 걸려있던 감은사 사진은 어디에 있을지가 궁금하다.
내가 망원경을 준 그 아들도 지금쯤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있을 터인데,
아마도 그 사진을 아버지의 유품으로 여기며 소중히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 사진을 다시 한번 보고싶다.
- 감은사지 3층석탑(문화재청 사진) -
<역사의 땅 경주…> 이 책은 ‘아름다운 땅’ ‘경주의 가람’ ‘경주의 탑’ ‘경주의 능묘’ ‘다시 듣는 전설, 경주이야기>의
5개 장으로 이뤄져 각장마다 경주의 유적에 얽힌 신라의 역사와 그에 깃든 얘기로 전개되고 있다.
대구사범과 동국대 국문과를 나온 최 선생의 필치가 여기에 한몫을 더해,
신라와 경주의 방대한 역사 이야기를 정감있게 엮어 나가고 있는 책이다.
조만간 경주 큰집을 찾아가는 길에 경주를 한번 둘러볼 것인데, 이 책을 갖고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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