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가이드를 맡은 후배의 말인즉슨 오늘 오르는 산은 그리 힘들지 않은 산이라는 것이다. ‘그리’ 보다는 ‘힘들지 않은’에 방점이 찍히는 투다. 70줄 나이의 몇몇 나이먹은 선배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와 배려인 줄 다 안다. 후배의 말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산 높이가 한 2-3백 미터도 안 되는 산이니, 일단 높지가 않다는 점에서 오르내리기 뭔 힘이 그리 들겠는가. 또 봉우리가 8개라서 붙여진 팔봉산이다. 낮은 고도에 8개의 봉우리니 아기자기한 오르내림이 될 것이고, 산행시간도 길게 잡아 3시간 정도이니 산에서 내려와 홍천강에서 ‘알탕’도 즐길 것이라는 여유도 저마다 가짐즉 하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좀 웃었다.
일행들의 이런 기대는 그러나 산행을 시작해 1봉으로 오르는 초입부터 뭔가 심상치 않음이 가미됐을 것이다. 잠시간의 산 소로를 벗어나자 바로 쳐 오르는 오름길이다. 그 이어서 암릉길이 이어진다. 한 20여분 그렇게 오르니, 뒤 따라는 오는 사이사이에서 궁시렁거리는 말들이 나온다. 아이고 내 이럴 줄 알았지. 쉬운 산이 있을랑가. 대충 이런 투의 말이다. 버스에서 후배도 암릉을 언급한 바 있다. 주의하라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좀 조심하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고 무난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약간의 ‘사탕발림’이었다는 것은, 1봉 오르는 길로 올라보면 금새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떡할 것인가. 이미 시작한 산행인 것을.
팔봉산이 알려진 것은 홍천강 유원지 때문이다. 강원도의 산으로서 유명해진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1980년대 초반, 여름 휴가철에 친구 가족들과 한번 피서를 와 본적이 있다. 그 때의 이 지역 명칭도 팔봉산보다는 홍천강 유원지로 더 알려져 있었다. 당시 한참 산에 좀 빠져 있을 때라 그런지 나는 강보다는 팔봉산이 더 다가왔다. 그래서 이튿날 새벽에 혼자 팔봉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첫 째 봉우리 쯤에서 그냥 내려왔다. 그냥 쉬엄쉬엄 오르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시도해 본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근 40년 만에 다시 오르는 팔봉산인데, 역시 처음 오를 때의 그 느낌이었다. 작지만 까칠한 산이 바로팔봉산이라는 것을. 1봉에서 다음 봉우리로 이어지는 길은 바윗길이다. 그것도 평탄한 바위들이 아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돌의 길이다. 사이사이 철책줄과 발 받침대를 만들어 놓아 그나마 그것들에 의지해 오르내리는 데 큰 위험은 없지만, 그래도 방심할만한 산은 결코 아니다.
봉우리가 많으니 오르고 내리는 깊이가 깊다. 산행꾼들끼리 통하는 말, “벌어놓은 것, 다 까먹는다”은 팔봉산에 통한다. 힘들여 한 봉우리 올라가 한 숨을 돌리면 한참을 내려가는 내림 길이다. 그 길에서 또 까마득하게 보이는 봉우리를 또 올라야하니 그렇지 않겠는가.
팔봉산의 하일라이트는 각 봉우리마다에서 보는 조망이다. 여름의 끄트머리, 멀리 아래로 펼쳐지는 기나 긴 홍천강은 싱싱한 생선의 비늘 처럼 태양아래 번쩍인다. 팔봉산의 봉우리에서 보여지는 조망에서 비로소 왜 이 산이 홍천강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명산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조망이 제일 좋은 봉우리는 8개의 그것들 중 가장 높은 2봉이다. 이 봉우리에는 산신각도 있다. 그 연원은 잘 모르겠으나, 참 아기자기한 산신각이다. 팔봉산의 산신령을 배향하는 정성스러움이 은근한 향내 속에서 무속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손을 모아 절을 드렸다. 일행들 중 다른 몇몇도 그랬다.
5,6봉 쯤에서 대개들 지친다. 우리들은 2봉에서 점심을 겸한 요기를 했다. 친구 하나가 소주 한병을 꼬불쳐 왔길래, 왠 떡인가 하고 마셨다. 소주가 약이 됐다. 땀 범벅 속에 그나마 힘을 내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렸음은 분명 그 소주의 덕이라고 나는 믿고있다.
8봉에서 바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팔봉산 산행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코스다. 급전직하의 내림 길이다. 자칫 하산 길이라 방심했다가는 큰 사고를 당하기가 쉽다. 내려가도 한참을 내려간다. 바로 아래에 푸른 홍천강이 빤히 보이는데도 끝이 없을 정도로 지겹게 내려가는 느낌이다. 아마도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하산의 끝이 바로 홍천강변이다. 발 바로 지척에 물이 넘실댄다. 산에서 내려 왔다고 팔봉산 산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걸어야 한다. 강을 건널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강변을 따라 산행기점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 길은 쉽게 말해 팔봉산의 밑변을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산을 올랐다가 내려와 그 밑변을 걸어 산행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일행 모두가 지쳤다. 강에서 ‘알탕’할 기려마저들 없어 보인다. 겨우 한다는 게 우통 정도 벗고 몸에 물질 정도 하는 것이다. 물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산행객들이다. 민물매운탕 집에서 뒷풀이를 하는데, 술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쳤다. 시원한 매운탕 국물을 좀 들이키고 나서야 비로소 서서이 술 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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