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줄 나이 늙은이들이 꾸무적한 날, 할 일이 정말 없는가 보다.
196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몇 반이었는가를 두고 오늘 고교동기 카톡방에 불이 났다.
나는 6반이었다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들이 나온 것이다.
내가 주장했던 근거 아닌 근거는 키 순으로 한 반의 내 번호가 12번이라 2612,
그러니까 2X6=12라는 등식으로 그때부터 지금껏 기억해온 것이었는데, 동기들 얘기로는 틀렸다는 것이다.
동기들 얘기도 엇갈렸다.
4반이라고도 했고 7반이라고도 했다. 마산에 있는 동기들에게까지 전화로 물어보기도 했는데, 역시 엇갈렸다.
나로서는 내 기억에 관한 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경천동지할 노릇일 뿐더러
한편으로 그런 점에서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내 주장만 고수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조금 전에는 드디어 급장을 한 김정수 박사까지 등장해 내가 급장인데 반을 모르겠냐며 7반을 주장하고 나섰고,
한 동기는 그러지말고 아예 나에게 출장비를 줘 마산의 학교에 보내 확인토록 해 논쟁을 마무리하자는 주장까지 폈다.
아무튼 지금까지 확인과 결론이 나지 않고있는 상태다.
나는 옛 앨범을 들춰 고교 2학년 때의 수학여행 사진까지를 올렸는데,
그 사진들에 몇 반이라는 기록이 나와있을리 없다. 그때 담임이 박준익 영어선생님이었다.
수학여행 그때가 생각난다. 설악산에서 서울로 와 하루를 묵었다.
선생님이 저녁무렵 나더러 갈 곳이 있는데 같이 가자 했다. 갈 곳이 어디였던가.
선생님 말로는 당신 이종사촌이 당시 영화배우였던 고은아인데 만나러 간다는 것이다.
그 말 아니더라도 촌놈이라 서울구경하러 따라갔을 터이지만, 고은아라는 말에 엄청 큰 기대를 갖고 따라 나섰다.
하지만 고은아를 만나지 못했고, 밤 늦게까지 영등포 봉천동인가를 돌아다니기만 하다 여관으로 돌아왔다.
박준익 선생님은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궁금하다. 고은아가 정말 이종사촌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1980년도 초 동대문구장에 고교야구 시합을 보러갔다가 당시 신일고에 계시던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때 물어봤어야 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 문득 궁금하다.
돌아가셨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움이 치솟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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